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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by 글 쓰기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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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2006)은 홀로코스트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특파원 자격으로 참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잡지 뉴요커에 연재했던 5개의 기사들을 묶어 간행한 책이다.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를 쓴 저자는 악의 평범성에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인간은 공적인 세계에 나와서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생각 및 사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주제를 던지고 있다.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로 도망 다니다 19605월에 체포된 후, 이듬 해 예루살렘의 특별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그가 수용소에서 죽게 만든 유대인은 수 백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항변한다. 승진을 하고 싶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며, 만약 독일이 승리했다면 자신은 영웅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당시 법정에 등장한 아이히만을 보고 충격을 받은 건 한나 아렌트였다. 반사회적 인물이자 악 그 자체일거라고 생각했던 아이히만은 단지 언어적 표현 능력이 떨어지고 생각하는 기능이 상실된 평범한 관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유대인 학살은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점을 지적하며, 이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고 주장한다.

 

악의 평범성주장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에 주목한다. 이 재판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민족주의의 틀 안에서 정의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닌 세계 시민주의 틀안에서 정의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유대인 조직의 나치스와의 협력 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든 진실은 만일 유대인이 정말로 조직이 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다면 희생자들 전체가 600만명에 달할 리가 없고, 절반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p.197) 또한 왜 유대인은 저항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수용된 유대인은 많았지만 개별적인 인간일 뿐이고 저항은 각자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유대교는 유대인의 삶을 규제하는 원리인데 유대인 대학살도 신의 뜻으로 감히 거역할 수 없다는 수동적인 복종의 태도에 기인하는 면도 있어 저항이 불가능했다고 본다. 한나 아렌트영화에서도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행위에 직접 참여했던 유대 지도자들의 역할로 인해 유럽 사회의 도덕이 완전히 와해되었다는 놀라운 점을 간파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부제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인데 악의 평범성 보다는 아이히만의 행위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 문제인 것 같다. 관료제와 악의 평범성은 다르다고 본다. 관료제는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명령 위계 질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체제이다. 나치 시대나 지금 세계의 관료제의 문제는 나아진 게 없다. 사회는 더 관료화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살고 있다는 점이 많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아이히만의 이상주의는 나치를 신봉하고 나치즘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는 삶이었다. ‘필요하면 자신의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 심문에서 아이히만은 말한다. 하지만 자기가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고 명령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부당한 것인지 그것을 사고하고 판단할 수 없는 무능력이 문제라고 한나 아렌트는 비판하고 있다. 시키는 것에만 충실하고 전혀 비판 의식을 갖지 못하면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에 대한 경고로서 스스로 생각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p.106)

 

아이히만이 인성을 버리고 완전히 포기한 건 가장 인간적인 특성인 생각하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살면서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건 생각의 힘이다라고 보여진다. 정치를 권력 게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한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 나서, 생각 안 하는 맹종의 위험에 빠진 또 다른 아이히만이 되지않기 위해 반성과 성찰을 해 본다. 좋은 책은 성찰의 힘을 주는 것 같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좋았다.

철학적으로 숙고하는 한나 아렌트의 글이 좋아서, “Vita Activa(활동적 삶)”이란 말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인간의 조건의 책도 손에 쥐고 읽고 있다. 생각의 힘(성찰의 힘)을 기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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