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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단순한 진심>

by 글 쓰기 202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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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유대

 

 

 

이 작품은 소설집 빛의 호위에 실린 단편 문주(2015)을 바탕으로 다시 장편 소설화 한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민음사,2019)이다. 조해진 작가는 디아스포라(Diaspora, 떠돌이)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많이 다루어 왔다. 국경을 넘어 떠도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 심지어 버림받았다는 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입양아의 경우도 있다. 단순한 진심(민음사,2019)6살 때 한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문주의 삶을 추적한다. 이 소설은 떠도는 존재의 이야기, 근원에 대해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나(입양 전 한국 이름 문주)는 독일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는 한국계 프랑스인이다. 독특한 이력 덕분에 문주 자신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영화감독 서영은 한국에 오라고 제안한다. 사실 주인공은 철로를 따라 걷다가 한 기관사에 의해 발견되어 그로부터 문주라는 이름을 부여 받는다. 이 소설은 서영의 제의를 받아들인 주인공이 영화를 찍는 동안 한국에서의 겪는 이야기들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문주의 정체성 찾기로 볼 수 있다. 기차역 철길에서 자신을 발견한 기관사를 만나서 자신의 입양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을 듣고자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체성 찾기의 일환이다. 자신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치유도 하고 실망도 한다. 한국에서 입양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많았던 것은 피와 유전자에 기반한 전통적인 가족에 너무 집착한 결과이다. 보호해 주기는커녕 배타적인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입양이 한국이 그렇게 많은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생명 하나하나에 대한 이름을 부여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책은 보여준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p.17)

 

주인공은 현재 아이를 가진 상태인데 그 생명을 환대하면서 동시에 복희 식당 할머니가 쓰러지게 되고 그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준다. 하나의 생명을 환대하면서 또 하나의 생명을 떠나보내고 애도한다. ‘모든 생명은 다 아름답고 그런 생명은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얼마 전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렸다. 이제 겨우 16개월을 살다간 정인이의 삶이 슬프고 애통하게 다가온다. 추운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며 우리가 정인이 부모다.’라며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단순 모성보다는 유대 내지 연대하는 그런 의미의 모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도 추연희라는 인물이 대안가족을 용감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가족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시도라 볼 수 있다. 주인공과 추연희도 아무 관계가 없는 사이지만 서로의 처지와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스며드는 존재가 된다. 다른 누군가를 보면서 우리는 사랑받고 치유받고 응원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관사가 내게 취한 행동, 그러니까 하나의 생명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삶으로 끌어들이는 방식.....” (p.130)

 

조해진 작가는 저마다 다른 그들의 근원과 살아온 과정과 먼 미래를 생각하니 생명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p.258) 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입양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삶에 등장하는 우연한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이름을 부르고 껴안으려는 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작가는 살아 있는 고향과 그에 뿌리박은 정체성이 애초에 불가능한 세계에서 문학(소설)을 통해 새로운 고향과 정체성을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은 떠도는 존재(디아스포라)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외면하지 않고 연대 내지 유대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말한다. “저마다 다른 그들의 근원과 살아온 과정과 먼 미래를 생각하니 생명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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