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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아버지의 해방일지>

by 글 쓰기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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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아버지

대구 김종협

 

얼마 전에 친구가 말했다. “독서모임도 많이 하고, 사무실 직장 동료들과도 오랫동안 생활했지만, 최근에 삶에 있어서 진실한 태도로 임하는 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많이 느끼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삶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와 거짓 없는 마음을 알게 해 주는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를 읽고, 그 친구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지아는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냈고,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이효석문학상, 심훈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등이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정지아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고상욱이라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이데올로기로만 아버지를 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여 주고자 작가는 용기 내어 가족 이야기를 쓴 것일까? 고상욱은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다정한 이웃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P. 7) 전봇대는 전기를 연결해주는 장치인데, 소설에서 상징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고상욱이라는 한 인간으로서 실천한 나눔과 연대, 솔선 수범의 삶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유머스럽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나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있는 지난 순간의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고상욱과 마찬가지로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인간을 신뢰했다. 손해 보는 일이 있어도,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셨다. 강요하지 않고 말씀이 없고, 뒤에서 묵묵히 자식들을 믿어주고 배려해 주는 아버지가 좋았고 그런 성품을 닮고 싶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다 보니, 어린 시절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한 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그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진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고 기억나게 해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가 죽고 난 뒤 3일 간의 장례식장에서 드러나는 주인공 고상욱과의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보여준다. 특히 열일고여덟이나 됐을 여자 아이와 여든 넘은 아버지가 담배 친구라니,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고상욱이의 삶의 태도가 신기하고 인간적이다. “…… 담배 친군디요.” , “양심 좀 챙기라대요. 최소한 교복은 벗고 피우는 것이 양심이라고 …… ” (P. 139) 그래서 정지아는 이 여자아이에게 소설 말미에 할배 뼛가루를 한줌 집어 건네고, 항꾼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묘사한다.

 

 

전남 구례의 구수한 말들과 3일 간의 장례식장에서 뒤엉킨 사람들의 인연이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 보시길. 피식피식 웃음이 나고 가슴이 따뜻해 짐을 느끼게 해준다. 고상욱이라는 아버지가 대단한 것도, 그렇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우리네 아버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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