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인 엄마?
대구 김종협
장정옥의 소설집 『숨은 눈』(학이사, 2018)은 그녀의 다섯 번째 책이자 첫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나’라는 한 개인을 떠나 ‘엄마’로 살아야 했던 여자들의 삶을 숨김없이 말한다. 여자는 결혼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관계에 걸맞은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혈연으로 이어지는 관계 형성을 통하여 인간사의 굴곡과 맞닥뜨리는 삶의 과정을 심리적 묘사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장정옥은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97년에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해무』로 등단했다. 2008년 제40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스무 살의 축제』가 당선된다. 저서로는 『비단길』, 『고요한 종소리』, 『나비와 불꽃놀이』 등이 있다.
이 책은 한 편의 경장편소설과 여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인 『숨은 눈』에서는 이혼한 여자의 심경을 다룬다. 이혼을 했지만 딸과의 관계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이혼한 전 남편의 간병인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의 화자는 많은 시간을 참아내며 산다. 남편은 아빠이기를 포기한 사람이고, 집을 떠난 건 그였다. 화자는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간병인을 시작한다. 일곱 편 모두가 버림과 버려짐의 공통된 핵심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 입고 희생당하는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결혼생활의 허상을 비판하고 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삶으로,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을 꿈꾸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엄마이기에 아이를 버리고 다른 삶을 선택할 수는 없다. 오직 자식을 향하는 마음이 전부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엄마라는 인간적인 연결고리가 여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역으로 말하는 것인가?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실존의 의미를 살피라고. 남자의 시선이 아닌 여자의 시선으로 결혼이라는 유리벽을 깰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설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물론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취업난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로 인하여 비혼을 선언하거나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이르렀다. 국가적으로 인구 문제 등 걱정이 앞서다 못해 서글픈 현실이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소설에서 도박 빚 때문에 집 나간 아들을 두둔하며 시어머니는 말한다. “사정이 어려울수록 식구들이 한데 모여 살아야 하는데.” (p.202), 구치소 면회 시간에 전 남편은 말한다. “그런걸 꼭 말로 해야 돼? 가족끼리.”(p.237) 그러나 화자인 주인공은 생각한다. "흔히 부부를 두고 한 배를 탔다고 표현하지만 알고 보면 각자가 자기 삶을 살 뿐이다."(p.202) 삶의 위기에 처한 여자에게 가족은 진정한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여자는 세상의 길에 혼자 서 있는 것인가? 소설 속 여자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냉철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는 진우의 엄마니까 아이를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한다.”(p.172)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가 된 여자들은 냉정한 사회에 맞설 보호벽이라곤 오로지 자기 자신뿐인 것을 알아야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숨은 눈』책은 모두 일곱 편의 소설이 나오지만, 각각 독립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기 보다는 여자의 정체성 문제에서 공통점이 있다. 소설 속 여자들의 존재 가치와 가정에서의 실존적인 의미를 묻는다. 즉 여자에게 결혼은 무엇이며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가 초월적인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엄마이기 때문인가··· 잠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