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관계
제29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은희경이 일곱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2022) 소설집에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네 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의 인물들은 뉴욕으로 떠나고,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인간 관계를 둘러싼 근원적 문제를 다룬다. 늘 곁에 있던 사람은 타인이거나 낯선 존재로 인식되고, 새롭고도 알 수 없는 얼굴들을 만나면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뉴욕이라는 낯선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보는가를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다.
은희경은 1959년 고창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등이 있다. 장편소설로는 『새의 선물』,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소년을 위로해줘』등이 있으며,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또 못 버린 물건들』이 있다.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화자인 마흔 여섯의 수진이는 이혼을 하고 홀로 뉴욕으로 떠난다. 그녀는 어학원에서 세네갈 출신의 대학생 마마두를 만난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 마마두와 수업 시간에 종종 짝을 이루며 가까워진다. 어학원 프로그램이 몇 주 남지 않았을 때, 그녀는 마마두와 처음으로 함께 학교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한다.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마마두의 모습이 그날따라 어딘지 불안해 보인다.
저자는 타인을 바라보는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때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익명과 일회성의 태도, 깊이 없는 친절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p.117)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복잡하고 고유한 존재이다. 하지만 정해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 편견과 선입견으로 타인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타민족의 한국인 김치에 대한 편견과 반대로 한국인들의 콜롬비아 사람에 대한 마약 편견은 잘못된 것이라 지적한다. 저자는 낯선 도시 뉴욕에서 주인공이 사람들을 국적과 인종으로 평가되는 관성적인 틀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주인공을 통해 타인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인식하기를 요구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가 뜻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장미를 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달콤한 향기는 그대로이다. 여전히 장미이다.” (p.194) 이는 장미를 이름이 아닌 사실과 본질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무엇이다란 식으로 이름으로 규정해 버리면 그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혹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 소설 끝부분에 마마두와의 시간을 꼼꼼히 되짚으며 마지막 작문 수업에서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의 장면을 나직한 목소리로 낭독한다. “가끔은 마마두가 나무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뜨거운 소금을 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 푸른 하늘과 호수의 장밋빛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해본다.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 (p.135)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일이 부질없다고 여겼던 주인공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늘과 호수의 장밋빛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주인공과 마마두가 할 수 있는 연대의 힘인 것이다.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타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법이 진정한 연대의 길임을 암시한다.
제29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평가이다.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인간관계를 둘러싼 근원적 문제를 작가 특유의 개성적이며 상큼한 어법으로 형상화했다.” 또 은희경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다. “우리의 세계와 삶이 서로 연결돼 있으니까, 동시대인으로서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항상 질문을 가지고 있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본 게 제 소설이다.” 서로 조금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