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얼룩
‘무의식에서만 존재하는 꿈을 정말 사고 팔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 속에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요즘 이와 유사한 판타지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북로망스, 2023)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언덕 위에 세워진 세탁소 이야기다. 조용한 마을에 마법처럼 등장한 세탁소를 오가는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과 속 깊은 대화를 통해 마음의 얼룩을 세탁해준다. 상처를 인정하고 마음을 열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 소설 전반에 흐른다.
윤정은 작가는 2012년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살며 사랑하며 이야기의 힘을 믿고 글을 쓰기를 좋아하며 다수의 에세이가 있다. 네이버 오디오클럽 〈윤정은의 책길을 걷다〉를 진행하고 있다, 작품으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사실은 이 말이 듣고 싶었어』, 『여행이거나 사랑이거나』 등이 있다.
주인공 지은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치유하는 능력과 원하는 것을 실현하는 두 가지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실현 능력을 잘못 발휘한 소녀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는다. 가족을 찾기 위해 수 세기를 넘나든다. 치유 능력을 발휘해야 실현 능력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은은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세운다. 제공한 옷을 입은 손님의 상처가 얼룩으로 드러나면 세탁을 해주거나 주름을 펴고 위로의 차를 만들어 건네준다. 세탁소의 첫 번째 손님으로 무명 영화감독인 재하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연희가 나타난다. 그리고 세탁소 주변에서 따스한 김밥을 건네주는 분식집 사장과 지은의 눈물을 목격하며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는 해인이 등장한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통해 저자는 힘든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던져 주기를 원한다. 빨래를 하면 찌든 때가 없어지듯이 우리 인간에 존재하는 마음의 얼룩도 세탁하면 빨래처럼 깨끗해질까?란 고민 속에서 마음 세탁소를 설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에 얼룩이 있고 또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나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얼룩내지 상처를 지우면 인생이 행복할까? 아니면 그것을 간직하고 사는게 옳은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고민이기도 하다.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아픈 기억을 지워드려요. 모든 얼룩 지워드립니다. 오세요, 마음 세탁소로.” (p.189) 등장인물 대다수가 마음의 얼룩을 세탁하고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얼룩을 지우지 않는 인물이 재하의 어머니 연자이다. “불행하다 느꼈던 상처를 지우고 싶던 순간이 물론 많았지만 그날들이 있었으니 오늘이 좋은 걸 알지 않겠어요.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아요.” (p.171) 저자도 연자의 이 말에 공감하는 것 같다. 얼룩을 지우는 게 정답일 수는 없다. 돌아보면 그 상처들도 본인의 삶이기 때문이고, 그런 얼룩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삶)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슬픔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고, 본인이 경험한 상처가 다른 이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 지은은 마법을 통해 메리골드 마을의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했지만 종국에는 자신도 위로와 치유를 얻는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위로했다 생각했지만 사실 사람들도 지은을 위로하며 함께해온 것이다.” (p.263) 지은은 깨닫는다. “나를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느끼며 꽃 피우는 오늘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던 그날이 아닐까. 엄마와 아빠가 알려주고 싶어했던 비밀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p.264)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힘은 실수하고 얼룩지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 있다. “눈이 부시게 빛나도록 아름다운 오늘이다.” (p.265)로 끝나는 소설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마음의 얼룩을 세탁하는 것도 행복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우리들 각자에게 달려 있음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재미있고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서 저자는 아픈 상처도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모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다시 살게끔 하는 누군가의 격려와 믿음은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나의 인생에 지우고 싶은 얼룩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