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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제0호>

by 글 쓰기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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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개정안에 한 동안 관심이 높았다. 법의 핵심적인 내용인 허위 · 조작보도 시 언론사가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다투는 법안이다.

가짜뉴스가 범람해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요즘에 눈에 띄는 소설이 있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거장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0(열린책들, 2018) 가 그것이다.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가짜뉴스를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미디어 종사자들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이 시대의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0의 작품 배경은 1992년 밀라노의 한 신문사이다. 대필 일을 전전하던 콜론나가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신생 미디어에 합류한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제0호(창간예비판) 제작이지만, 사실 경영진은 신문을 발행할 의사가 없다. 유력인들의 추문과 비리로 점철된 가짜 특종으로 그들을 협박해 세력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솔리니의 죽음을 둘러싼 대형 폭로 기사를 준비하던 한 기자가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런데 창간을 앞둔 신문사에 지원한 기자 6명은 이런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제대로 기자 노릇을 하고 싶어 창간 예비판인 0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현장에 자금을 대는 이는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로 알려진 세력가이다. 큰 신문을 이끄는 엘리트의 세계를 장악함으로써 정재계의 거물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제호인 도마니는 세력 확장을 위한 협박용 언론으로, 창간 예비판에 사회의 거물들이 궁지로 몰 만한 정보를 흘려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고자 한다.

금융계와 정계의 이른바 성역에 있는 거물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기사 내용으로 창간 예비판을 낼 예정이다. 그러면 거물들은 창간을 중단하라고 요청할 것이고, 그 대가로 거물들의 성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될 겁니다.” (p.37) 계속되는 편집 회의에서 그들은 진실보다는 특종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한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을 논의한다. 공정성을 잃은 보도와 뚜렷한 방향 없는 단말마의 음성적인 정보 공세 등 엉터리 저널리즘의 표상을 보여준다.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의심케 한다.

 

또한 무솔리니의 죽음을 둘러싼 황색 언론의 행태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결국 기자 중 한 사람이 무솔리니가 살아 있다는 음모론을 취재한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가설을 토대로 사라진 무솔리니의 흔적을 추적하며 교황, 정치가, 폭력리스트, 은행, 마피아, CIA, 프리메이슨까지 얽힌 폭로 기사를 준비하던 기자 브라가도초가 등에 칼을 맞고 살해된다. 음모론에 쉽게 빠져드는 인간의 속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치 새로운 폭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이전의 뉴스를 지워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브라가도초가 바로 그 일을 했어.” (p.309) 역사에 관한 하나의 음모론, 무솔리니가 살아 있다?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망상적인 추측일 뿐, 현실은 허구를 뛰어넘으니까.

 

 

작품에서 에코는 대중을 겨냥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황색 저널리즘의 민낯을 생생하게 그리며, 가짜 뉴스와 조작의 세계에 일침을 가한다.

움베르토에코의 마지막 소설인 이 작품은 실제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현대인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메스미디어의 광폭한 영향력과 저널리즘의 현 주소를 되돌아 보게 하는 책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사회는 가짜 뉴스로 국민들은 큰 피해를 입고 사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나마 조금은 진실에 접근하고 위안을 받았으면 한다. 움베르트 에코는 말한다. “사람들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다. 거짓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다 얻은 다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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