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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의<자기 앞의 생>

by 글 쓰기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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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김종협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집필한 소설이 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용경식 옮김, 문학동네,2015)이다. 인간에게 생이 무슨 의미인지를 프랑스에서 소외된 인물들을 소재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소년 모모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위선, 불합리한 사회분위기를 풍자한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인생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심오하게 그려낸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1914년 모스크바에서 유대계 러시안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중대 대위로 참전하고, 참전 중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6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1962년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1980년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내용을 밝히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중복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겨, 세계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로자 부인은 유태인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삶을 꾸려나기기 위해 창녀로 일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아 기른다. 그리고 로자 부인에게 맡겨진 모모로 불리는 아랍 소년 모하메드가 성장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모모는 삶이 주는 험한 교훈을 어린 나이에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 로자 부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다. 모모의 유일한 보호자인 로자 부인은 늙고 병든 채 점차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죽음은 단순한 사라짐의 의미가 아니다. 그녀에게 죽음은 고통 받았던 현실의 삶과 비교해 결코 추하지 않은 해방 같은 죽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모모만이 그녀의 병과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 로자 부인의 죽음은 작가인 에밀 아자르의 삶(권총 자살)과 연관 지어 살펴보면, 그 시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의 함축적 의미까지 살펴볼 수 있다. 유년 시절에 어머니와 단둘이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해서, 외롭게 성장했던 에밀 아자르에게 정체성은 중요한 화두로 작용했으니까. 그것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선 소외, 고독, 전쟁, 불평등 같은 사회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사회에 남겨진 사회적 문제들을 어린 모모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로자 부인은 전쟁 당시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한계를 경험했고 창녀라는 신분적 한계로 인해 늘 억압과 고통의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그녀에게 현실의 삶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 나는 늙은 유태인이다. 그동안 나는 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온갖 끔찍한 짓을 다 당했다.”(p.278)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강제로 수용된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로자 부인의 삶은 슬프다. 로자 부인이 이제 천천히 죽어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모모는 끝까지 함께하며 돌봐준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p.232) 모모는 로자 부인를 파괴해가는 것은 다름아니 ()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로자 부인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은 생이지만 그녀를 죽게 만든 것도 생이라는 사실을...

 

 

로자 부인의 병과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연민을 유발하곤 한다. 병들어 늙어가는 노친네에게 주변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로자 부인을 정성껏 진찰해주는 카츠 선생님,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마음씨 좋은 롤라 아줌마, 7층까지 로자 부인을 고이 모셔다주는 자움 씨네 형제들이 있다. 그리고 왈룸바 씨가 동료 다섯을 데려와 로자 부인을 위해 노래와 춤을 춰 준다. 그다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소시민들이 로자 부인 곁을 지키며 알게 모르게 그녀를 보살핀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이 서로의 밑바닥 처지와 고통을 충분히 알기 때문인가?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이 소설 끝에 나오는 에밀 아자르 삶과 죽음에서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저자가 남긴 마지막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우리 생의 이면에 있는, 삶에 대해 고민이 생긴다면 이 책 자기 앞의 생을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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