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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by 글 쓰기 202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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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2006)이다. 저자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담은 소설이다.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보낸 어른들은 애국심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쟁이란 결국 정치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비극적인 참상 그 자체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1898년 독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191611월에 육군에 소집되어 78보병 연대에 배속된다. 1917년에 서부 전선으로 이송된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팔과 목에 포탄 파편을 맞고 부상을 당한다. 뒤스부르크 전쟁 병원에 이송되고 78연대 보충 대대로 복귀한 후 훈장을 받고 제대한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미국으로 건너간다. 주요 작품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개선문, 생명의 불꽃,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검은 오벨리스크등이 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허황된 애국심에 들뜬 담임 선생 칸토레크의 권유로,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반 친구들과 함께 입대한다. 18세의 어린 나이이다. 10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서서히 변한다. 입대해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을 때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들은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게 전선에서 주인공 파울 보이머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는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다보면 느끼는 것이, 극한 상황에서 병사들을 지탱해 주는 것이 전우애임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들은 동시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마음속에서 견고하고, 실제적인 연대감이 싹텄다는 사실이었다. 전쟁터에서 전쟁이 가져다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전우애였다!” (p.36)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죽음을 앞둔 케머리히는 자기 장화를 탐내는 뮐러에게 주라고 하고 결국 숨을 거둔다. 파울 보이머는 마지막 남아있는 친구인 카친스키를 등에 업고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의무대에 도착한다. 하지만 오는 도중 주인공이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파편을 맞아 사망한 것을 위생병이 말해준다. 파울 보이머는 위생병이 놀라워하며 묻는 말에 대답한다. “너희들은 친척이 아닌가? 아니다, 우린 친척이 관계가 아니다. 다만 국경 수비병 카친스키가 죽었을 뿐이다.” (p.301)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같이 입대한 반 친구들과의 전우애는 강하고 돈독함을 보여준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또한 저자는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기성세대의 허위의식과 전쟁의 무의미한 참상을 잘 보여준다. 이 책 곳곳에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립, 허위의식에 가득 찬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분노가 드러나 있다. 담임 선생인 칸토레크는 우리 반 친구들을 모조리 이끌고 지역 사령부에 가서 자원입대하게 만든다.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부정적인 기성세대의 대표 인물이다. 고향 어른들은 모두 안전한 후방에서 입으로만 조국에 대한 사랑을 말하면서, 전방에서 들려오는 진실을 외면한다. “전방에선 적어도 먹는 것은 괜찮다며, 그래서 얼굴이 좋아 보이네, 파울. 여기서는 사정이 더 나빠. 항상 군인들한테 최상품이 가니 말이야!” (p.178) 우리들은 두개골이 없는 병사, 두 다리가 다 날아간 병사, 흘러내리는 창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응급 치료소까지 온 병사, 과다 출혈로 죽지 않으려고 이빨로 팔의 정맥을 두 시간 동안이나 꽉 물고 있던 병사 등 전쟁의 참상을 야전 병원에서 목격하게 된다. “어김없이 해는 떠오르고, 밤은 찾아오며, 유탄은 쉭쉭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죽어 간다.” (p.146) 죽어 가는 사람들 속에서 전쟁의 비참함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쟁에는 절대적이고 숭고한 이유 따윈 없다.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고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리는, 전쟁은 그런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간 평범한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전쟁의 본질을 극히 담담하고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실제로 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시대 권력자들의 욕심으로 생긴 문명국간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다. 어느 한 쪽이 승리 했을지라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피지배층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전사하자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라고 서술한다. 고통과 죽음 밑바닥에서 어찌 인간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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