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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모순>

by 글 쓰기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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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순

 

 

양귀자의 모순(쓰다, 2013) 소설이 최근 인기를 끌고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98년 첫 출간된 이 책이 공감되는 내용이라며 입소문이 더해져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것은 읽을 때마다 해석의 의미가 남달라 한 번 더 되풀이 읽는 독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독자가 읽기에 좋고 이해하기가 좋은 글이 훌륭한 글임을 대변해 주는 소설이다. 모순은 글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다. 이 소설은 무엇을 해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귀자는 195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문학사상>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창작집 귀머거리새원미동 사람들을 출간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 장편소설에 주력한다. 유주현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을 수상한다. 저서로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등이 있다.

 

 

25살의 화자인 미혼여성 안진진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술만 마시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집을 나가버리곤 한다. 어머니는 가난 앞에서 집안의 경제권을 책임지고 양말과 속옷을 팔며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 어머니와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로 41일 각자 중매로 동시에 결혼식을 한다. 하지만 한쪽은 가난하고 한쪽은 부유한 삶을 살게된다. 결혼을 생각하는 화자인 나는 완벽한 계획남 나영규와 자유롭고 순수한 김장우의 두 남자를 두고 고민한다.

 

 

저자는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다고 설명한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1일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 어머니와 이모의 삶은 보편적이지 않다. 누가 봐도 행복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이모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p.283) 이모는 너무 평탄해서 결핍이라고는 경험하지 못하는 삶이 불행하고 우울하다고 느낀 것이다. 이모는 무덤 속 같은 평온을 못견뎌했던 것이다. 반대로 어머니는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고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행복해 한다. “정신도 오락가락해. 치매까지 겹친 것 같다. 병원에 가봐야 돈만 잡아먹는 병이지만 어떡하냐. 새끼들 아버진데 도로 내쫓을 수도 없고.” (P.260)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했을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슬슬 힘을 발휘해 간호한다. 한 몸의 두 사람(어머니와 이모)이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았던 것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노력한 만큼의 생을 살아간다. 행복의 이면에는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는 행복이 있다.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고 누군가는 살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다. 스스로 체험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삶은 모순 그자체이다.

 

 

주인공 안진진은 인생 최대의 고민이 생긴다. 바로 두 남자의 프로포즈였다. 컴퓨터 학원에서 만난 나영규는 완벽한 계획남으로 집안의 힘든 점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감을 주는 남자이다. 계획만이 인생의 전부 같은 남자의 태도에 살짝 질리기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반대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김장우는 우유부단하고 주머니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자유롭고 순수해서 안진진의 마음을 녹이는 좀 더 사랑하는 인물이다. 두 남자의 고백을 받은 안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한다. “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P.296) 결국 안진진은 스스로 가지지 못했던 평온을 경험해 보기 위해 사랑하는 김장우 대신 나영규를 선택한 것이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관계에서 발생되는 이 모순 때문에 본인의 삶은 발전할 것이라고 안진진은 믿는다.

 

 

양귀자는 삶은 항상 모순적이다라고 말한다. 그 모든 것들의 명확한 경계선이 삶에 존재하느냐고 묻는다. 풍요의 이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이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양자택일을 하거나 나누려고 하는 것보다 너무나 모순되어 있고 깊이가 있다. 이런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화자인 안진진은 갖은 고생으로 폭삭 늙고 억척스럽지만 문제를 해결하려 힘쓰는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된 삶이지만 죽음을 선택한 이모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모순을 느낀다. 또한 두 남자의 프로포즈 사이에서도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제로 삶의 모순을 발견한다.

스스로를 희미한 존재로 여기는 25살의 안진진의 시선으로 전해주는 삶의 모순 현상을 저자는 깔끔한 문체로 풀어낸다. 차분하게 읽으면서 모순으로 얽힌 삶을 이해해 보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p.296) 라고 했으니, 그래도 모순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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