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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by 글 쓰기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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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사랑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김화영 옮김, 열린책들, 2022)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와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제롬과 그의 외사촌 누이 알리사의 금욕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앙드레 지드는 종교적 계율이 가져온 위선과 비극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의 허무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에게 진실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겸허히 되짚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앙드레 지드는 1869년 프랑스 파리 법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부유한 개신교 집안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청교도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으며, 예민하고 신경성 발작을 자주 일으켰다. 1891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로 문단에 데뷔한다. 1893년 북아프리카로 떠난 여행에서 첫 동성애 경험을 하게 되고, 종교적 구속과 금기로부터의 해방감을 체험한다. 저서로 지상의 양식, 배덕자, 전원 교향곡, 교황청의 지하실등이 있다.

 

제롬은 의사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사를 한다. 제롬은 해마다 여름이면 퐁괴즈마르에 있는 뷔콜랭 외삼촌 집으로 놀러 가곤 한다. 그 집에는 두 살 위인 외사촌 누이 알리사, 한 살 아래인 쥘리에트 그리고 어린 동생 로베르가 살고 있다. 어느 날 뷔콜랭 외숙모가 자신의 애인인 젊은 장교를 집안에 불러들여 희롱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사실로 괴로워하는 알리사를 보고 제롬은 그녀를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 주기로 결심한다. 제롬은 좁은 문을 주제로 한 보티에 목사의 설교를 듣고 크게 감동을 받는다.

 

 

등장 인물 중 알리사의 내면 갈등과 고뇌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알리사에게 있어서 삶이란 신이라는 존재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다. 인간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불완전한 감정 혹은 불완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알리사는 이성에 대한 사랑과 신을 향한 복종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느님, 제발 그에게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도록 가르쳐 줄 힘을 저에게 허락하여 주소서. 그러면 저의 공덕보다 비길 데 없이 더 나은 그의 공덕을 당신께 바칠 것이오니…….이것은 장차 당신 품에서 그를 되찾으려 함이 아니옵니까…….”(p.187)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슬픈 운명을 알리사는 슬픔으로 호소한다.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행복과 신에 대한 믿음은 양립할 수 없는가?에 해답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지극히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신을 향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서로 대치되는 가치인가? 우리가 신을 향해 나아가고픈 마음과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서로 다른 형태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좁은 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훗날 <좁은 문>으로 바꾸었다. 좁은 문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알리사와 제롬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좁은 문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p.28) 제롬의 상상 속에서 좁은 문은 고독 속에서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는 알리사의 방문이 떠오른다. 좁은 문은 바로 알리사의 마음의 문을 의미하며, 그 문을 닫음으로써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하고 캄캄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 -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이옵니다.” (p.189) 알리사는 신에게 가는 길은 나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좁은 길임을 인식한다. 알리사는 기독교적인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며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는 신비주의자와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그릇된 생각과 지나친 신비주의 추구로 고독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알리사의 운명이 과연 행복할까?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제롬과 알리사는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목적지가 달랐다. 제롬은 인간 세상에서의 사랑과 행복을 추구했고, 알리사는 신의 품, 천국을 향해서였다. 같이 시작했지만 나란히 가지 못하고 철길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가고 말았다.앙드레 지드는 종교와 도덕의 구속과 타율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도덕성 탐구를 통해 새로운 인간 정신의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앙드레 지드의 인간의 본성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내재한 좁은 문은 우리에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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