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성
『페스트』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이다. 오랑에서의 페스트 발생으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도시의 봉쇄, 퇴치를 위한 절망적인 노력 등이 대하 서사시처럼 전개된다.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암울했던 시기를 겪은 인류에게 희망적이고 인간애가 넘치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품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유호식 옮김, 문학동네, 2015)를 읽어본다.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동부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1936년 알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이듬해 첫 책 『안과 겉』을 출간했다. 1938년 좌파 일간지 〈알제 레퓌블리캥〉의 기자로 종사했으며 레지스탕스 기관지 〈콩바〉의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이방인』, 『시지프 신화』, 『칼리굴라』, 『반항인』 등 다수가 있다.
먼저 재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무서운 전염병이 휩쓰는 가운데 폐쇄, 고립되어버린 도시 속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이 제시된다. 그 중에서 의사 리외가 폐쇄된 도시에서 의료인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이 남다르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의사 리외에게 영웅놀이는 그만두고 모든 사람들이 해방되기를 기다리자고 말한다. 이에 리외는 대답한다.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P.194) 사실 자기가 맡은 소임을 완수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재난 상황과 마주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던지 자기만 살겠다고 직분을 포기하는 사태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리외의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다른 도시의 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공포에 휩싸여 죽어가는 군중 속에서 인간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p.225)오늘날에도 우리가 조금의 희망을 갖는 것은, 크고 작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리외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연대 의식의 문제이다. 타루가 조직한 자원보건대 단체는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실현된 공동체의 형식이다. 파리에서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발이 묶인 랑베르는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닌데요?’라고 말하자 리외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안됐지만 선생도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사람이 되는 겁니다.” (P.106) 리외는 오랑 도시에 포고령과 법률이 있고 또 페스트가 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말한다. 실제 카뮈는 『작가수첩』에서도 “비록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나 잔혹성에 대해서일망정 연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라고 연대 의식을 강조한다. 개인은 그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살 수 없으며, 그런 만큼 사회에 항상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카뮈의 반항은 개인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차 사회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카뮈의 부조리 계열에서 살펴보면 집단적 반항 계열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독한 개인들에서 연대하는 우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부조리에 맞선 개인의 고독한 반항은 『페스트』에서 이르러 투쟁을 함께해야 하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으로 바뀐 것이다.
페스트에 대처하는 등장 인물들의 서로 다른 태도와 자세가 극명하게 묘사된다. 도시에서 일어난 사태가 이 고장 사람이 아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기자 랑베르의 도피적 태도가 있다. 이 재앙은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신의 징벌임을 설교하는 파늘루 신부가 있다. 특히 재미난 인물은 코타르의 부정적인 태도이다. 페스트가 휩쓸기 전에는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불행했던 그는 페스트와 더불어 모든 사람이 다 불행해지자 그 하향 평준화 덕에 오히려 살맛이 난다. 이들 모두는 부분적으로 작가 카뮈 자신을 닮았다. 랑베르처럼 실제 카뮈는 신문사에 몸 담았으며, 〈콩바〉지에 레지스탕스 운동을 촉구했던 기자이기도 했다.
등장 인물 리외는 카뮈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카뮈의 생각과 태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리외는 소설 마지막에 경고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P.361)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겪은 우리에게 『페스트』는 묻는다 재앙의 공포 속에서 불행과 교훈을 제대로 배웠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