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안톤 체호프는 러시아의 작가, 극작가이다. 23년 동안 짧은 콩트, 단편, 희곡 등 총 60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고, 다수의 작품이 세계적인 고전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백 여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끊임없이 전세계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체호프는 현대 단편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문학에 새로운 움직임을 이끌었다. 그의 창작법의 독창적인 특징은 의식의 흐름이라 불리며, 독자에게 결말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점이 독특하다. 안톤 체호프의 『체호프 단편선』 (박현섭 옮김, 민음사, 2022)을 읽어본다.
안톤 체호프는 1860년 제정 러시아 남서부 예카테리노슬라프주에서 태어났다. 1876년 김나지야 잡지에 수필을 썼다. 1878년 자신의 최초 희곡 『아버지 없는 인생』을 쓴다. 1879년 김나지야 졸업 후 모스크바대 의과대학 입학한다. 의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집필 활동을 병행하며 수많은 유머 단편을 기고한다. 1888년 단편집 『황혼 속에서』로 학술 아카데미의 푸시킨상을 수상한다. 저서로는 『곰』, 『초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등 다수가 있다.
『관리의 죽음』은 주인공 체르뱌코프가 오페라 관람 중에 장군의 뒤통수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사소한 사건이 발생한다. 아주 사소한 사건이 주인공의 어리석음 때문에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각하, 저는 어제 와서 폐를 끼친 사람입니다만. 저는 다만 재채기를 하고 침을 튀긴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려던 것이었지, 놀리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꺼져! 뭐라고요? 꺼지라니까!” (p.11) 체르뱌코프의 배 속에서 무언가 터져 버렸다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죽었다. 체호프는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서 결코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만의 유머 소설의 절묘한 템포를 확인하게 된다.
『티푸스』는 갑자기 중병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한 젊은이의 체험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육체적인 사지의 마비 이상은 멀쩡한 주인공의 지각과 의식을 대혼돈의 상태에 빠뜨린다. “누이가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뜻밖의 소식은 클리모프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전달되었지만 회복기의 중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적인 기쁨을 이기지는 못했다.” (p.160)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자기 때문에 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실감하지 못한 채 동물적인 생존의 기쁨에 의존하는 모습은 가히 놀랍다. 실제 의사인 체호프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정신을 압도하는 힘을 발휘한다고 보는 것인가?
『주교』는 체호프가 심한 객혈로 겪으면서 몸이 쇠약해진 말년에 쓴 작품이다.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지난 삶과 닥쳐올 죽음을 응시하는 주교의 모습은 바로 저자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교는 친어머니조차도 낯설게 느끼며 고위 성직자로서의 자신의 삶이 과영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죽어 간다. “예전의 모든 것은 어딘가로 멀리멀리 사라져 버려 더 이상 되풀이되지도, 께속되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좋구나!” (p.186) 그 순간에 주교가 깨달은 것은 무엇인지 체호프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실제 체호프가 장결핵으로 생을 마감할 때 남긴 마지막 말은 ‘이히 슈테르베(나는 죽는다)’ 독일어였다.
수 많은 단편 작품 중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유명하다. 한 젊은 여자가 얄타의 해안가에 나타나자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그녀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고 그냥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고들 한다. 구로프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그녀의 이름이 안나 세르게예브나이고, 결혼해서 s에 2년째 살고 있고, 얄타에는 한 달 더 머물 예정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평생 처음으로, 머리칼이 하앟게 세기 시작했을 때에야 진짜 사랑을 알게 됐다고 고백하는 구로프와 그에게 점점 더 강한 애착을 느끼는 안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인생은 무엇일까? 구로프는 사람에게 두 개의 삶이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삶이 있고, 또 하나는 비밀리에 흘러가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알맹이를 이루는 것들은 남몰래 비밀스레 이루어지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기 식대로 모든 사람은 어두운 비밀의 베일 속에서 진짜이자 가장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구로프의 해석이 재미있다. 여기서도 체호프는 앞으로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라는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체호프의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는 무언가에 대해 혹은 누군가에 대해 뚜렷한 평가를 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선입관이나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읽을 필요가 없어 좋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가 체호프가 갖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의견이나 태도와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어서 체호프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사소한 것들이 가지는 사건들을 냉정하고 세심하게 그려내는 체호프의 단편을 접하는 유혹에 빠져 보기를 기대해 본다. 안톤 체호프의 말들 중 한부분이다. “나는 고통에는 비명과 눈물로, 비열함에는 분노로, 지긋지긋함에는 증오로 답한다. 이것을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