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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by 글 쓰기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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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글쓰기와 같다

대구 김종협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아니 에르노를 선정하고, 그 선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이다.” 아니 에르노는 임신 중단, 빈곤 등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삼은 글쓰기로 사회적 불평등을 폭로해 왔다.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인 단순한 열정(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2022 )을 읽어 본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문학교수이다. 1974빈 옷장으로 등단했고, 자리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발표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을 수상했다. 2011삶을 쓰다가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었고, 2022년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로 내정된다. 저서로는 부끄러움, 탐닉, 집착, 칼 같은 글쓰기, 남자의 자리, 사진의 용도등 다수가 있다.

 

 

단순한 열정은 한 여인의 범상치 않은 사랑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그와 헤어진다. 하지만 그 사랑이 남겨둔 기억들을 반추한다. 회상 하면서 그 사랑이 폭풍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임을 깨닫는다. 이는 그녀의 일상과 몸과 정신과 영혼을 완전히 뒤엎어 놓는다. 넋이 나간 듯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 남자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온 신경이 쏠린다. “A를 기다리는 것 외의 다른 일에 조금이라도 정신을 빼앗겨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p.15)

 

 

아니 에르노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며 성본능을 예술혼과 동등한 자리에 놓음으로써 문학으로서의 지위를 구축한다. 육욕에 휘둘리는 중년 여성의 감정적 배설 정도로 전락하는 소설이 아니다. 사랑의 몸짓 하나하나까지 사회적 통념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것은 관음증, 노출벽이 아니라 내적 필요에 따른 욕구 때문인 것이다. “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p.19~20) 주인공에게는 글쓰기는 내면의 해방구이자 자신을 찾는 작업이고, 삶의 매 순간을 증명해 주는 증거인 것이다. 저자인 에르노는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함으로 자신이 겪은 사랑을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낱낱이 써나갔던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잊힐 수밖에 없는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두려고 했던 것이지도 모른다.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 후에 쓴 한 여자, 출신 성분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한 아버지에 관한 책 자리, 그리고 자신의 낙태 경험을 토대로 쓴 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에르노 자신이 겪은 이야기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굉장히 날카롭고 생생한 언어로 표현한다. 한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그 사람의 내밀한 독백같고 누군가가 고해성사할 때 하는 고백처럼 들린다.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아니 에르노는 말했다. “여성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겠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통해 불의와 맞서 싸우겠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저자는 매우 현실적인 글쓰기 방식을 취한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쓴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만나보시길 권한다. 노벨문학상은 한 작품에 주는 상이 아니라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기에, 아니 에르노의 수많은 작품 중 어느 한 작품을 읽어도 그녀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역사, 사회를 향한 작가만의 시선을 가공이나 은유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초월하여 인간의 공통된 정서인 열정을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서 공감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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