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사랑
스탕달의 『적과 흑』(이동렬 옮김,민음사,2022)은 신분과 계급의 벽을 넘어 비상을 시도한 청년의 욕망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날카로운 심리 분석과 사회 비판으로 사실주의의 문을 연 스탕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1820대로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친 왕정복고기의 시기이다. 스탕달은 자신의 시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시대의 심각한 문제을 『적과 흑』에 담아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적과 흑』은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고전 문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다.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동남부에 자리한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앙리마리 벨이며, 스탕달은 필명이다. 1800년 그는 군인이 되어 나폴레옹 원정군을 따라 알프스 산맥을 넘는다. 1822년에 발표한 『연애론』으로 호평을 받은 스탕달은 초기에는 『라신과 셰익스피어』 같은 극작품을 쓴다. 이후 소설에 관심을 갖고 1827년 첫 소설 『아르망스』를 발표한다. 저서로 『파르마의 수도원』, 『이탈리아 회화사』,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등이 있다.
시골 목재상의 아들인 쥘리앵 소렐은 라틴어 성서를 모두 외울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가진 청년이다. 드 레날 씨의 집 아이들의 가정 교사가 된 쥘리앵 소렐은 부유한 계급에 대한 증오심과 열등감 때문에 드 레날 부인을 유혹한다. 나중에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문이 시내에 퍼지자 쥘리앵 소렐은 신학교에 입학하고, 사제의 도움으로 드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된다. 이곳에서도 드 라 몰 후작의 거만한 딸 마틸드를 임신시키고 후작의 결혼 허락을 받아 낸다.
저자는 그 당시 왕정복고 체제의 사회적 현실을 날카롭게 통찰한다. 『적과 흑』은 프랑스 왕정복고기의 정치적 연대기라 할 만큼 불안정한 체제 말기의 양상을 포착하여 그 의미를 밝혀 신랄하게 비판한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한 이후에 프랑스는 다시금 성직자와 귀족이 지배하는 낡은 체제로 복귀한다. 능력이 기회를 갖게끔 해주지만 이 기회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주인공 쥘리앵 소렐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의 위대한 귀감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처럼 전장에서의 활약을 통해 출세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였다. “사제들이 십만 프랑의 연봉, 즉 나폴레옹 사단의 유명한 장군들의 연봉보다 세 배나 더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제가 되어야겠다.” (p. 1권 44) 쥘리앵 소렐은 자기가 사는 사회는 아무리 비상한 개인적 능력을 갖추었다 해도 목수의 아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임을 인식한다. 자신의 비천한 출생 신분 때문에 도처에서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되는 것을 뼈아프게 의식하게 된다. 이는 상류 계층과 부르주아에 대한 열등감으로 사회 현실에 분노하는 도전적인 인물이 되어 간다.
『적과 흑』은 인간의 욕망과 삶의 깨달음에 대한 뛰어난 통찰도 담고 있다. 쥘리앵 소렐과 마틸드는 결혼 직전까지 이르지만, 그들 사이의 감정은 진정한 애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자기 자신일 뿐이고, 사실은 자존심 때문에 연애 게임에 말려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 마틸드는 진정한 사랑으로, 죽은 쥘리앵 소렐이 선택한 무덤까지 따라가서 장례식을 치러준다. 쥘리앵 소렐은 드 레날 부인에 대한 살인 미수 협의로 감옥에 갇힌 뒤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귀족과 부유 계층의 위선을 저주하며 살아온 자신 또한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드 레날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진실한 것임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짧은 삶의 얼마 안 되는 나날을 행복하게 지냅시다. 부유층 인사들에게는 남의 목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맙시다.” (p.2권 414) 찬란한 햇빛이 만물에 내리쬐는 날 쥘리앵 소렐은 아무런 가식없이 최후를 마친다. 저자는 주인공의 계급 상승이라는 성공 보다는 사회의 불의에 저항해 싸우다 자각 속에서 죽어가는 인물로 그려낸다.
스탕달은 주인공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분노를 표출한다. 기득권을 획득한 왕정복고하의 특권층은 쥘리앵 소렐의 모습에서 혁명의 무서운 기억과 기득권에 도전하는 두려운 존재로 인식한다.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 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p.2권 372) 하층민이 사회의 상층으로 뛰어오르려 했던 반항과 도전의 과정이 배타적인 상류 계급의 반감을 사서 죽음을 불러오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이는 기득권을 독점하려는 특권층이 쥘리앵 소렐을 제물로 삼아 도전 세력들을 응징하려는 잘못된 사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스탕달은 불평등한 주인공의 재판과 같이 당시의 사회의 모순과 부당성을 낱낱이 폭로코자 한다.
『적과 흑』은 프랑스 왕정복고하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많은 요소들이 숨어 있다. 스탕달이 꿰뚫어 보는 역사와 사회와 삶의 원리에 대한 통찰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주인공 쥘리앵 소렐을 통해 맹렬하게 비판한 사회적 문제들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현대인의 고뇌와 아픔도 여전히 심각하게 남아 있기에 이 소설의 의미가 더 다가온다. 그래서 19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스탕달의 『적과 흑』이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