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미덕
『템페스트』 (이경식옮김, 문학동네, 2022)는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이자 사랑받는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다. Tempest(템페스트)는 제목처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셰익스피어의 예술적 상상력이 화려하게 드러난 복수, 사랑, 용서를 마법과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다. 주인공이 마법의 힘으로 복수의 기회를 잡지만, 결국 사랑의 힘으로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는 은퇴를 앞둔 노작가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템페스트』는 유한한 인간 삶의 덧없음과 더불어 생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걸작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 중부의 스트래트퍼드 어폰 에이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문법학교에 다니며 라틴어 문법과 로마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익혔다. 1586년경 런던에서 배우 겸 작가로서 극단 활동을 시작한다. 1590년경 『헨리 6세』를 집필하며 극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국왕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20여 년간 서른일곱 편의 희곡과 시를 발표했다. 그의 희곡들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다. 저서로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햄릿』,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 다수가 있다.
밀라노의 대공 푸로스퍼로는 마술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사를 소홀히 한다. 동생 앤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의 힘을 빌어 그의 지위를 찬탈한다. 푸로스퍼로는 보트에 실려 딸 미랜더와 함께 망망대해로 쫓겨나는데, 나폴리의 인자한 곤잘로 덕분에 얼마의 먹을거리와 옷가지와 책을 가지고 떠난다. 당도한 곳은 악의 마녀 시코랙스가 살던 무인도였다. 그녀는 괴물 캘리밴을 낳았고, 에어리얼이라는 정령을 소나무 속에 가두어놓고 노예로 부렸다. 푸로스퍼로는 에어리얼을 구해주었고, 에어리얼은 은혜에 보답코자 푸로스퍼로를 주인으로 모신다. 한편 알론조 왕과 앤토니오는 튀니즈 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귀국하는 길에 폭풍우를 만난다.
『템페스트』 는 이전의 셰익스피어의 비극과는 달리 관용과 용서와 화해가 이 극의 주된 테마인 희극이다. 선은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한다. 복수와 처벌대신에 용서와 관용이 있고, 절망과 암흑 대신에 희망과 빛이 있다. “가장 못된 녀석, 너를 동생이라고 부른다면 내 입이 더러워질 정도이지만, 내 그 음흉한 너의 죄를 용서해주겠다 - 너의 죄 전부를 말이다.” (p.117) 푸로스퍼로는 끝까지 뉘우칠 줄 모르는 동생 앤토니오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보지도 않고 그를 용서해준다. 주인공은 동생 앤토니오와 스테퍼노, 트린큘로 캘리밴 등이 저지른 큰 악행으로 뼈아픈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고귀한 이성으로 분노를 잠재우고, 용서로서 복수보다 더 가치 있는 행동을 한다. “비록 그자들이 나에게 저지른 큰 죄는 나의 골수에 사무치나, 나는 고매한 이성으로써 분노를 참고 있는 것이다. 더 귀한 행동은 복수에 있기보다는 용서의 미덕에 있는 것이다.” (p.112) 인생은 악의와 불의와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역시 살아볼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셰익스피어가 주인공을 통해 인간을 거듭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무조건적인 용서, 과거의 원한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화해는 시들고 병든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는 행동인 것이다.
『템페스트』 에는 셰익스피어의 주된 관심사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도 나온다. 미랜더와 퍼디넌드 두 젊은 남녀의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사랑의 결합이 그것이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이는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혼돈에서 찬란한 질서의 신세계인 최고의 기적을 창조해낸 것이다. 미랜더와 퍼디넌드의 결혼에는 두 연인의 만남 이상의 의미가 또 담겨있다. 밀라노를 다스리는 푸로스퍼로의 유일한 후계자 미랜더와 나폴리의 왕자 퍼디넌드가 맺어짐으로써 밀라노와 나폴리의 결합과 동맹을 상징한다. “밀라노 대공이 쫓겨난 건 그의 후손이 나폴리의 왕이 되기 위해서였나요? 이것은 보통 이상의 기쁨입니다.” (p.122), “나는 예속 중인 밀라노의 공국을 포기하겠소.” (p.117) 그 당시 영국과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면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괴물 캘리밴은 유럽인들이 미개하다고 생각한 원주민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노예로 부린다는 것은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착취하는 강대국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올더스 헉슬리의 고전 소설 『멋진 신세계』가 있다.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의 제5막 제1장에서 미랜더가 오랜만에 사람을 보자 반가워 독백하는 말에서 따온 것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훌륭한 사람들이 여기에 이렇게도 많다니! 인간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분들이 존재하다니, 참, 찬란한 신세계로다!” (p.120) 미랜더의 말을 통해 저자는 인간 세계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희망을 알려준다. 『템페스트』는 마법사, 정령, 괴물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템페스트』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한창 무대에 올라 공연 중에 있다.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상상력과 사상을 만난다면 그 이상의 축복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