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잃은 건 직장만이 아니었다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해 작품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이 매달 25일 발행하는 ‘월간 핀시리즈’ 32번째 작품이 있다. 서유미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현대문학, 2020) 소설이 그것이다. 서유미는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다. 같은 해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고, 장편소설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소설집 〈당분간 인간〉》과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를 펴냈다.
육아 휴직을 한 40대 초반 노경주는 회사에 복직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둔다. 일은 나중에도 구할 수 있지만 아이의 유아기는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인공은 딸 지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카페 ‘제이니’에서 재취업을 위한 구직 활동을 계속하지만 녹록지 않다. 그러는 동안 결혼 전까지 마음을 나누던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인간관계도 단절된다.
작가는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서 경단녀의 이중적 고뇌를 묘사한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 친구 등 기존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벗어나지도 적응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15~54세 기혼 여성 857만여명 가운데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2020년 한 해만 150만여명(17.6%)에 이른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힘들다는 점을 보여 주는 통계 수치이다. 소설에서는 이로 인해 결국 마음의 문을 닫고 자발적 고립의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는다고 본다. 경단녀의 쓸쓸한 현실과 고통이 단지 재취업 문제뿐일까?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로 다가오는 현 시점에서 우리가 곱씹어 볼 내용이다.
또한 이 소설은 타인과의 사이에 공감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임신으로 인해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감을 안고 있는 주인공에게 산전 검사를 담당하는 의사는 말한다. “잘 지나갈 거예요. 그럴 때 있죠.” (p. 61) 아무 일도 없는데 울고 싶은 마음에 대해 설명 하기가 어려울 때, 의사는 친밀감을 갖고 다정하게 설명하며 안정감을 찾아준다. 작품 후반부에서도 대학 동창 중 한 명인 J와 경주는 지금 사는 얘기를 나누고 감정을 털어놓는 동안 심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오랜만에 가족이 아닌 타인과 계산 없이 얘기하는 즐거움에 취했다.” (p.94) 이렇듯 방황하는 인간 내면에 집중하며 정직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때 서로 간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결혼과 출산 후 익숙한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에 선 주인공 여성이 느끼는 불안한 내면을 섬세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서유미 작가는 이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주장한다.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p.174) 소설 말미에 주인공은 회상한다. 항상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던 두 달 동안의 시간을 보낸 카페 주인 미스 제이니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투영한 주인공은 희망을 품는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