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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by 글 쓰기 202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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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지?

 

 

 

 

달과 6펜스(민음사, 2000)인간의 굴레에서(1915)의 작가 서머싯 몸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19년에 출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서머싯 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제목 달과 6펜스타임스 문예부록에 게재된 전작 인간의 굴레에서의 서평 내용에서 따온 말이다. 그 서평에는 다음의 글이 나온다.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필립은 을 동경한 나머지 발치에 있는 ‘6펜스은화는 보지 못했다.”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삼아, 열정에 사로잡힌 한 예술가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와 고갱 사이에는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 작가는 우리에게 (인생)이란?’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세기 초 런던에서 주식 중개인을 하며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홀로 파리로 떠난다. 스트릭랜드는 파리에서 의식주라는 인간의 최소 필요에 거의 신경을 끈 채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한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냉혹하고 잔혹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유일한 친구이자 착한 예술가인 더크 스트로브에게서 아내 블란치를 빼앗은 끝에 그녀를 음독 자살로 내몬다. 이후 그는 방랑을 거듭하다 남태평양의 섬 타이티로 들어가, 원주민 아타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다. 한센병에 걸려 몸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자각하면서 한쪽 벽 가득 대작을 완성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잘해야 3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p.67~69)

 

이 대목에서 어떤 사람은 스트릭랜드가 가족을 내팽개치고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사는 게 의미 없는 그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공감이 간다. 인생에서 터닝 포인터라 할 만한 시기에 이런 결정을 과감하게 할 수 있다는 스트릭랜드의 행동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당신은 블란치 스트로브의 죽음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가책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내가 왜 가책을 느껴야 한단 말이오?” (p199) 스트릭랜드는 블란치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소설 속 화자는 얼마나 냉혹한지 인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그 사람 인생을 망친 일은 생각나지 않았던가 보죠.”(p199) “블란치 스트로브는 나한테 버림을 받아서 자살한 게 아냐.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그랬지.” (p.205) 그는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려던 그녀의 태도에 넌덜머리가 났다라고 말한다. 난 사랑 같은 건 원치 않아. 그럴 시간이 없소. 욕구가 내 정신을 구속하니까 말야.”(p.202) 스트릭랜드의 주장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한때 같이 살았던 블란치의 자살에 대한 인간적 내지 도덕적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시키더래요. 집에 불을 지른 다음 모조리 탈 때까지, 작대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떠나지 말라고요.”

하지만 아타가 말을 듣지 않더군요. 약속을 했다면서요. 마른 마룻바닥이며 판다너스 돗자리에 석유를 쏟아붓고 불을 질렀다더군요. 집은 눈 깜짝할 사이에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더랍니다. 위대한 걸작이 그렇게 해서 사라져버린 거죠.“ (p.298~299)

 

스트릭랜드는 타이티 섬에서 원주민 소녀 아타와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작품을 모두 태워버리라고 한다. 만약, 내가 아타의 상황이었다면 유언에 따라 작품을 불태울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것도 천재의 작품인데... 솔직히 후대의 걸작!, 생명까지 바친 고귀한 그림이라 못 할 것 같다. 스트릭랜드의 생애가 궁핍하지만, 예술에 대한 자존심은 대단한 것으로 전반부에 묘사된다. 이처럼 자기가 바랐던 걸 이룬 것으로 만족할 뿐이지,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값어치를 평가받기를 원하는 스트릭랜드가 아님을 보여주는 행동일 것이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의 인간성이 독특하다고 여겨진다.

인생의 정답은 없으나, 옳은 목표를 세우고 진정한 인생은 자신 안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작품으로 한번쯤 다시 왜 사는지?’에 대한 자문(自問)을 던져준 작품이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에 나오는 문구가 생각난다. 다른 이가 먼저 살아가고 먼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이 가르치는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요.” 일상의 안락에서 벗어나 오로지 정신적인 삶만 살았던 스트릭랜드를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는 시간이고, 작품이 전하는 감동과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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