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인생
대구 김종협
『The Little Prince』(Antoine de Saint-Exupery, Mariner Books,2000)책의 원서를 어렵지만 조금씩 읽어오고 있다. 그런 중에 도서관의 어린이 책만을 대여하는 곳에서 다음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김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이다. 도서관 사서가 『어린 왕자』란 제목만 보고 어린이 책 코너에 배치한 것이라 생각된다. 김현 번역의 이 책에는 “내가 얼마나 회가 동했겠는가 상상해보세요.”(p.20)란 번역어가 나오는데,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회가 동하다‘의 뜻은 어떤 일에 구미가 생기거나 욕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어린 왕자』의 번역본은 수없이 많이 출간되어 있지만, 『어린 왕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김현 번역본을 읽어 보았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 1900~1944)는 프랑스 리옹 출생으로, 군복무 중 조종사 면허를 땄다. 제대 후에 항공회사에서 우편 비행을 담당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찰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1944년 7월 마지막 정찰비행 중 행방불명이 되어 귀환하지 못했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상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다. 저서로는 『남방 우편기』, 『전시 조종사』, 『환상』, 『비행사』, 『삶의 감각』 등이 있다.
모든 작품은 작가의 사상을 담고 있다. 『어린 왕자』는 저자가 43세 때에 미국에서 발표한 소설이다. 미국에서 저자는 프랑스에서 배를 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그래서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점령하의 프랑스 저항인들을 생각한다. “이 책은 친구인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 그는 지금 추위와 굶주림을 겪으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p.7) 즉 저자가 꿈꾸는 환상은 자유와 프랑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나치즘을 바오밥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실제 저자도 프랑스에서 작품을 출판했으나, 독일 점령군의 요청으로 1943년에 판매 금지 당하기도 한다.
『어린 왕자』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사막과 우물로 표상되어 있다. 삶은 권위와 계산과 술주정 등으로 대표되는 반복의 연속이다. 그것은 사막과 같이 메마른 어떤 것이다. 하지만 사막은 그것이 메마르기 때문에 더욱 귀중한지도 모른다. 우물의 존재는 구원이다. 메마른 삶 속에 우물로서 표현되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에 메마른 삶은 더욱 가치가 있다. “별이란 보이지 않는 꽃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p.113)라고 어린 왕자가 말한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인지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껍질뿐일지도 모른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삶과 생존에 아무런 관련도 없던 것을 자기 삶의 반경 속에 끌어넣어서 자기의 삶의 일부분으로 만든다는 것, 그것이 길들인다는 행위이다. 자기 밖에 존재하는 숱한 대상 가운데서 자기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것을 선택하여 그것을 길들인다는 것은 한 삶의 모든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은 그가 길들인 것의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의 우물은 자기가 길들인 어떤 것일 수 있다. 우물이란 한 개인의 삶이 목표로 삼는 어떤 환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왕자의 환상은 장미꽃이지만, 저자의 그것은 바로 어린 왕자에게서 찾고자 한 게 아닐까. 그리하여 환상은 현실의 메마른 사막 속에서 그들을 지탱시켜주는 힘이 된다. 그래서 사막과 우물이라는 명제는 현실과 환상이라는 명제로 비유된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문학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번역본이 출간되어 우리에게도 사정은 같다. 하지만 생텍쥐페리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로도 유명한 이 책을 이해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읽을수록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어린 왕자』의 위대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경험을 원하시는 분에게 권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인생이 더 의미있는 인생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