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고도는?
1953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파리에서만 300회 이상의 장기 공연을 기록했고 세계 50여 개 나라에 번역 공연되면서 연극계에 혁신적인 사건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로에서 인기 있는 연극으로 지금도 공연되는 작품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오증자 옮김, 민음사, 2022)는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희극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의 기이한 대화로 구성된 부조리 문학의 꽃이다.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은 현대인의 고독과 부재한 소통을 상징한다.
사뮈엘 베케트는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폭스로크에서 태어났다. 1923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했다. 1931년 『프루스트론』를 발표하고 대학 강단에 섰다. 2차 세계 대전 중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치를 피해 은거하면서 작품을 집필한다. 1952년에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해 널리 이름을 알렸고, 이 작품으로 반연극의 선구자가 된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저서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몰로이』, 『왔다 갔다』, 『말없는 행위』 등이 있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 언덕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다. 그곳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주인공이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은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다리는 장소와 시간이 맞는지도 불분명하다. 두 사람은 이제 습관이 된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온갖 대화와 행동을 한다.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쳐 갈 때,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난다.
저자는 모든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도구이자 존재의 핵심은 말(언어)이라고 본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말이다. 말은 동작을 유발하고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한다. “무슨 말이고 좀 해봐라. 지금 찾고 있는 중이다. 무슨 말이든 해보라니까!” (p.108) 이 혼돈과 불모의 세계에서 나날이 함몰되어 가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던지고 듣고 교환한다. 이야기는 그들에게 삶의 도구이며 위안이다. 말은 나아가 살아 있음을 확인해 준다.
다음 대화는 이 희극의 메인 구절이다.
에스트라공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누구인지 그가 과연 언제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한정적이지 않고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도(Godot)가 영어와 프랑스어로 신을 뜻하는 God와 Dieu의 합성어라는 해석도 있다. 또 고도는 ‘빵이다, 희망이다’란 해석도 있다.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이 연극을 보고 고도는 곧 자유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있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p.137) 이처럼 고도는 관객이나 독자가 간절하게 갈망하는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기다리고 그리워하거나 열망하는 그 모든 것이 고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2막이 끝나도 고도는 나타나지 않고 쭉 이어지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작품으로 전통적인 사실주의극에 반기를 든 부조리극의 고전이다. 사뮈엘 베케트에게 있어 기다림은 허황한 짓이 아니라 본능적인 삶의 방식이다. 저자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등장 인물들을 통해 이 냉혹하고 무질서한 혼돈의 세계를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한다. 다음 달 중순 ‘고도를 기다리며’ 앵콜공연 일정이 나와 있다. 이 책 두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림과 왜 싸우는지 연극의 대사와 동작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