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역사
대구 김종협
어제 오늘 수도권과 충청권에 눈이 내리고 있다. -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뒤안으로 김치를 내려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김치독을 열 때 -라는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시와 함께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 (문학동네, 1999)이다. 민족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상처받고 고통을 당한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작품이다.
박완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 속에는 막힘 없는 유려한 문체와 일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대표작으로는 『나목』,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엄마의 말뚝』, 『배반의 여름』 등이 있다. 한국 전쟁, 분단, 물질 중심주의, 여성 억압 등을 소재로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아름답고 정 넘치던 고향 마을 행촌리에서 순박하게 사랑을 키워나가던 만득이와 곱단이가 있다. 하지만 행복한 때도 잠시 일제가 벌인 전쟁 때문에 만득이는 징병으로 끌려간다. 곱단이네 식구들은 순사들이 처녀들을 무작위로 끌고 간다는 흉흉한 소문으로 공포에 휩싸인다. 결국 곱단이네는 그 고운 딸을 번갯불에 콩 궈먹듯이 나이든 남자에게 재취 자리로 보내버린다.
특이한 점은 만득이가 곱단이 신랑이 되리라는 걸 온 동네가 다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곱단이하고 만득이가 좋아하는 것을 바람났다고 말하지 않고 연애 건다고 말한 것은 일반 스캔들과 차별짓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마을 사람들로서는 일종의 애정이요 동경이었다. 만득이가 개천에서 난 용이라면 곱단이는 진흙탕에 핀 연꽃이라며 기특해하며 귀여워하였다. “만득이와 곱단이는 요샛말로 하면 마을의 마스코트라고나 할까. 둘 다 행복해지지 않으면 재앙이라도 내릴 것처럼 지켜주고 싶어했고, 만득이의 처사는 그런 소박한 인심에도 거슬리지 않는 최선의 것이었다. (p.204)
이 소설에서 만득이와 곱단이를 갈라놓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일본군 위안부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 위안소에 강제 감금당해 일본군의 성노예로 반복적인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곱단이 부모는 곱단이가 위안부로 끌려갈까 두려워 서둘러 신의주에 사는 중늙은이게 시집을 보내 버린다. 이후 작가는 정신대 할머니를 돕기위한 모임에서 만득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곱단이를 잊지 못한 것이 아닌냐고 죽은 순애를 대신해 묻는다. 만득이는 남의 나라인 중국에서 바라보니 이렇게 지척인데 내 나라에선 왜 그렇게 멀었을까 하는 것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장만득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p214)
우리는 정작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일제가 낳은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만득이의 분단된 조국의 땅을 바라보며 서럽게 우는 감정을 우리 세대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일제 강점기의 징병, 정신대, 전쟁과 분단의 비극 속에서 아픈 역사에 대한 설명과 사건의 실마리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비극은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공통된 아픔과 상처라는 문제점을 던져준다. 눈 오는 날씨에 조용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할머니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