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벼움?
체코 태생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옮김,민음사, 1999)은 표면적으로는 연인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멜로 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주제의식과 서술형식을 비롯한 작품 전반에는 니체의 철학이 깊게 관통하고 있는 만큼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존재론적 질문과 포스트모더니즘적 형식을 실험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장르를 불문하고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주로 사회주의 사회의 인간 관계를 다루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열쇠의 소유자』, 『불멸』, 『느림』, 『농담』 등이 있고 에세이집 『소설의 기법』이 있다. 사회주의 이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당시 체코 사회에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문제시되었고, 결국 1979년 체코 시민권이 박탈당하기도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요 키워드는 사랑과 정치,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 존재, 키치 등을 들 수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세계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세계로 영혼이 자유자재로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계, 위선의 세계가 아닌 세계이다. 소설 속 주요 주인공인 토마스와 테레자 그리고 사비나와 프란츠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특징과 행동 동기를 살펴봄으로써 사랑과 성에 대한 철학에 다가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알아볼 만하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란 똑같은 것의 무한 반복이 아니라, 늘 새로운 것이 반복되는 것, 즉 일회성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착된 영원한 진리 같은 것이 맨날 되돌아 온다는 것이 아니다. 영원회귀를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필연을 의미한다. 반면에 일회성의 반복, 새로운 것의 반복으로 받아들임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인생은 일회적이다.”(einmal ist keinmal, 독일 격언) 라는 이 명제에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이 바뀔 수 있다. 이 격언은 가벼움(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왜냐하면 인생은 되풀이되지 않고 오직 한 번만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번, 세 번,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p.256) 머리를 좀 아프게 하지만,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을 깨닫게 만든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에서 인간 생활에 반드시 존재하는 속성인 ‘키치’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키치는 위선의 세계이다. 실제로 존재하기 보다는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 남에게 보이고 싶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이 키치를 부정한다. 사비나는 과격하게 대답한다.“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 (p.291) 이는 서방 사람들이 그녀의 인생 위에 만들고자 했던 키치로부터 탈출하려는 외침이다. 그리고 사비나가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달아난 것도 바로 키치 세계로부터의 탈출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똥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것을 형이상학적 죽음으로 규정한 한 것도 똥이 존재하지 않는 신들의 세계를 비꼬고 있는 키치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진 것은 부피가 사라진 세계의 무한한 가벼움 때문에 한심하게 치솟은 천칭 접시 위에 자기 몸을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p.281) 본래 싸구려, 저속한 예술품 등을 일컬었던 키치가 이 소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혹은 본질이 아닌 본질을 가장한 위선적 모습들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저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키치에 대한 에세이라고 언급하기도 할 만큼 이 소설을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에 의해 좌절된 1968년 즈음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러시아군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좌절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존재의 위기감에 휩싸인 주인공들이 육체와 영혼의 갈등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성의 문제를 본질적,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차원이 높은 문학으로서 독자글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유명해진 제목 만큼이나 읽을수록 더 많은 해석과 이야기를 던져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