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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농담>

by 글 쓰기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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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실존?

대구 김종협

 

1967년에 출판된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소설 농담(방미경 옮김, 민음사, 1999)은 스탈린주의가 팽배했던 1950년대 공산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 주인공 루드빅과 작가 쿤데라가 젊은 시절 공산주의에 헌신하며 겪은 환상과 악몽의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실제 저자의 삶과 비슷하게, 1948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약 15년 동안 체코슬로바키아의 인간 존재의 붕괴를 여러 측면에서 조명한 작품이다. 획일적인 사상이 요구되는 전제주의 시대에 인간의 다양성, 사상과 관점의 다양성을 극명하게 다루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1929년 체코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하여 현재 파리에서 거주하며 집필하고 있다. 주요 소설 작품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사랑들, 생은 다른 곳에, 이별의 왈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느림, 정체성등의 다수가 있고 에세이집 소설의 기법, 배반된 유언들이 있다.

 

 

주인공 루드빅은 대학 시절에 여자 친구 마르케타에게 엽서에 농담 한마디를 적어 보낸다. 사회주의 건설에 경도돼 있던 당시 대학과 사회는 루드빅을 트로츠키주의로 규정하고, 공산당에서 축출한다. 검은 배지 부대에 배속되어 거기에서 석탄 캐는 광부로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가 그가 살아가는 힘의 버팀목이 된다. 자기를 파멸의 길로 가게한 장본인인 제마넥에 대한 복수를 생각한다. 우연히 제마넥의 부인인 헬레나를 알게 되고 그녀를 정복함으로써 제마넥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P.51)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무심코 내밷은 한마디 말로 순식간에 바뀌는 인생을 보여준다. 주인공 루드빅은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모든 끈이 끊어졌으며 당연히 가야 할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본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실행된다. 사회가 그에게 강요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없는 개인의 연약함과 비참함을 루드빅은 깨닫게 된다. 그로인해 주인공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는다. 엽서마저도 감시당하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할까?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이 감시의 기준에 걸려 진실이 왜곡되어 해석되고 제대로 해명할 기회도 없이 개인을 파멸로 몰아넣는 것은 불행한 사회이다. 소설 속 화자의 삶이 쿤데라 작가 본인의 삶과 은밀히 상통함을 보여준다. 체코 사회의 어두운 역사 속에 처한 개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게 해준다. 절대로 농담이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저자는 또한 체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된 사유속에서도 은근히 체코의 역사에 대한 애착을 소설 뒷부분에서 보여준다. 체코 전통음악이나 왕들의 기마행렬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체코의 역사를 변모되어 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게 묘사한다. 특히 야로슬라브로 대변되는 전통문화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소설속에서 왕들의 기마행렬에서 왕으로 지목된 아들이 숨어버리는 사건과 기마행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거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행사가 그저 형식만 갖춘 초라한 행사로 전락한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술집에서 열린 연주회가 민속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취객들의 소란 속에 묻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하기도 한다. 모라비아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모임에 주인공 루드빅이 참여하지만, 마지막에 야로슬라브의 죽음으로 전통문화의 종말을 우려하는 저자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증오의 대상 제마넥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이 귀향이 결국은 이렇게 땅에 쓰러진 내 친구를 두팔에 안고 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전율하였다.” (p.432)

 

 

이 작품은 루드빅, 헬레나, 야로슬라브, 코스트카라는 주인공들의 독백과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인물들이 다른 주인공들의 관점에서 조명되는 소설 기법이 독특하다. 농담의 구성은 다양한 목소리로 이루어진다. 네 명의 등장인물이 내적 독백을 통해서 각각 다른 목소리를 번갈아 내고 있다. 농담 같은 주인공 루드빅의 인생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개인의 실존적 물음을 던져주는 책이다. 문학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신선한 감동과 전율을 찾고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농담이 그저 농담이 아닌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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