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이동렬 옮김, 민음사, 2022)은 1883년 출간되자마자 단번에 2만 5천부가 매진되었으며 독자들의 반응은 실로 대단했다. 주제와 묘사에 있어서 모파상의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초기의 풍자와 감상에서 벗어나 후기의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로 특징되는 구원 없는 염세적인 성향이 짙은 작품이다. 꿈과 희망에 부풀던 한 소녀의 절망에 얽힌 삶이 모파상이 자라난 노르망디의 절벽과 바다를 배경으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기 드 모파상은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루앙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의 친구였던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았다. 에밀 졸라가 주축이 되어 만든 자연주의 작품집 <메당의 저녁>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하여 역량을 인정받는다.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등과 더불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한다. 저서로 『옛날 이야기』, 『죽음처럼 강하다』, 『벨아미』, 『뱃놀이』 등이 있다.
귀족의 외동딸 잔느는 평범하고 꿈이 많은 소녀다. 아버지 권유에 따라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수녀원을 나와 쥘리앵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쥘리앵은 돈과 여자밖에 모르는 남자였고 잔느에게 환멸만을 안겨준다. 쥘리앵의 악행은 도를 넘어 하녀를 임신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백작 부인과 간통을 하다 그 남편에게 살해되고 만다. 잔느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외아들 폴이었지만 아들마저도 재산을 거덜 내고 가출한다.
이 소설은 노르망디 시골을 배경으로 평범한 한 여자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가장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흐름을 보여주며, 저자 모파상의 특성이 가장 진하게 녹아 있다. 모파상이 유년 시절부터 간직해 온 내밀한 기쁨과 고통과 슬픔이 배어 있으며, 그가 자란 고향 노르망디에 대한 향수와 사랑이 스며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이상한 인물이나 염세적인 성향의 등장 인물이 나오는데 이는 모파상의 이런 내면을 반영한다.
꿈결 같이 짧은 한때의 신혼여행을 마지막으로 하나하나의 사건이 주인공 잔느의 희망을 빼앗고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이유가 뭘까? 이 의문을 저자는 해답을 제시해 주지 않고 이 소설 전반을 통해서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 (p.350) 하녀 로잘리의 작품 마지막 이 대사는 동정할 만한 진실의 의미는 담고 있다. 하지만 치료받을 수 없는 고독감에 사로잡혀 있는 잔느에게는 울림이 없다. 인생에 대한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만큼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에게 연이어 배신당하고 희생되는 가엾은 잔느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운명을 개척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는 자연주의 작가인 모파상의 사물에 대한 독창적인 관찰 방법과 정확한 표현 기법을 만날 수 있다. 이는 복잡한 기교가 배제되어 소설을 비교적 수월하게 읽히는데 도움을 준다. “달콤한 꽃향기가 향기로운 포도주처럼 그녀를 취하게 했다. 해변에 철썩이는 아련한 파도 소리를 들으면 그녀 마음에도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았다.”(p.33) 유쾌하고 자유로운 삶일 때의 잔느의 심정이다. “낮은 잿빛 하늘이 세상을 짓누르고 있는 듯이 보였다. 누르스름한 쓸쓸한 물결이 까마득히 펼쳐져 있었다.” (p.311) 혼자 남게 된 잔느의 괴로운 상념의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모파상은 배경 등 자연에 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그가 탐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여자의 일생』은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여인이 겪는 인생의 굴곡을 간결하게 그려낸다. 원 제목인 ‘Une Vie’는 <한 인생>을 의미하기에 <여자의 일생>는 좀 광범위한 느낌이 든다. 잔느의 삶이 고독과 허무로 끝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간 존재의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여자의 일생』은 우리의 삶을 관조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힌트를 준다. 다시말해 모파상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여자의 일생』은 여자의 일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지혜를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