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있는 지식
리영희 선생의 삶과 철학을 임헌영 교수와의 특별 대담 형식으로 씌여진 『대화』를 읽고, 많이 충격을 받고 감탄한 경험이 있다. 오랫동안 주입되고 굳어진 신념 체계와 가치관이 마음속에서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얼마전 헌 책방에서 ‘사상의 은사’로 불리시는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한길사, 1993)의 제2개정판을 보고, 벅찬 마음으로 구입했다. 한국 사회의 독단적인 신념과 학설에 대해 비판적 논리로 파헤친 화제의 책이다. 세계를 인식하고 사회를 보는 올바른 시각이 이런 것이구나.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리영희는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 삭주에서 태어났다. 1950년 7월에 군에 입대하여 1957년까지 7년간 복무한다. 조선일보사와 합동통신사에서 정치부기자 및 외신부장을 지낸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신문학과 교수 겸 중국문제연수소 연구교수로 재직한다. 박정희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고, 전두환정권에 의해 1980년에 다시 해직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 『분단을 넘어서』, 『역정』, 『자유인』 등이 있고, 편저로 『8억인과의 대화』, 『중국백서』, 『10억인의 나라』가 있다.
이 책은 초판을 낸 『偶像과 理性』을 한글판으로 고쳐 낸 제2개정판 제12쇄이다. 그때그때 발표했던 논문과 신문 · 잡지에 실렸던 평론 등 약 10년에 걸친 것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구성은 1장 미국의 겉과 속, 2장 불효자의 변, 3장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4장 베트남 전쟁의 총평가, 5장 냉전과 역사의 전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먼저 1장 〈미국의 겉과 속〉에서 미국의 참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게끔 깨닫게 해준다. 미국을 자유로운 나라로 착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 평화를 기원하는 나라인가? 전쟁 없이 경제가 움직일 수 있는가?하고 의문을 제시한다. 즉 미국이 군사국가라는 것이다. 경제구조를 군사화 해놓고, 그 결과로 도래한 무역경쟁력 저하와 무역부채 증대를 전쟁무기 판매의 강요와 무역문호 개방 압력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군사국가화의 결과는 복지 예산의 축소로 나타난다. 미국의 빈곤층은 전체 인구의 13.6%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대하는 ‘미국식 자유’ 국가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주위에 학자이든 정치인이든 뭔가 얘기를 하면 ‘미국에서는’, ‘미국에서 발표되는 것을 보면’ 말들을 난발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진실이 어디있는지를 외면한 채 말이다. “전쟁이나 대규모의 군사행동의 전망은 희박해진 것이 증권 폭락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나라의 금융 · 산업 · 경제 ······ 그것을 토대로 하는 정치와 국민생활은 모두 전쟁이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 된다.” (p.26) 똑바른 인식을 가지고 정확한 지식에 입각한 태도를 견지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3장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에서 저자는 문화대혁명을 인류 최초의 인간의식 개조혁명이라고 설명한다. 이 혁명 시도의 핵심이 물질주의보다 인간 우선주의가 그들의 사회원리라는 것이다. 모택동의 토론 · 비판 · 단결의 준칙은 중국사회의 모든 수준에서의 국민생활을 지도하는 기본방식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낡은 사상과 습성을 바꾸는 사상혁명인 것이다. “레닌은 혁명은 했으나 사회주의를 건설하지는 못했고, 스탈린은 사회주의 건설은 했지만 사상(인간) 혁명은 못했는데, 모택동은 두 사람의 한 것과 못한 것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이다.” (P.120) 인간 혁명을 가능한 것으로 보고 또 실제로 인간의 관념을 혁명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1991년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목도한 후 저자는 자기고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비판한다. “문화혁명이 운동의 법칙상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 하는 점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대화』 책에서) 하지만 두려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저자의 자세에 감탄할 따름이다. 세상만사 흑 · 백 이데올로기로 갈라버리는 사고방식과 협소하고 왜곡된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올바른 깨달음을 선사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저자는 책 첫 부분의 〈읽는 이에게〉에서 『우상과 이성』이라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p.8) 이성의 눈으로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저자의 강렬한 각오가 엿보인다. 민족현실,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 내재하는 허구를 이성의 눈으로 명쾌하게 해부해내는 저자의 용기와 비평 정신에 경이로움마저 든다.
읽으면서 판단의 토대는 정보임을 알게 된다. 일방적으로 각색되어 전달되는 보도는 오히려 우리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사태에 대하는 이해관계에 따라 한 측면이 강조되고 딴 측면은 애써 무시되는 보도방식이 오랫동안 계속된 탓에 이성적이고 균형잡힌 판단이 지극히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시의(時宜)가 지난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오늘의 시대상황에서도 치밀한 분석력과 예리한 통찰력에 바탕을 둔 저자의 논거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