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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시로 납치하다>

by 글 쓰기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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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깨달음을 선물한 것은 삶 그 자체였다

대구 김종협

 

어떤 시는 재미있고, 어떤 시는 마음에 남고, 어떤 시는 반전이 있고, 또 어떤 시는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책이 있다. 류시화의 시로 납치하다(더숲, 2018)이다. 전 세계 시인들의 좋은 시 모음집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이은 삶이 던지는 질문에 시로 답하는 명시를 모은 책이다.

 

류시화는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안재찬이 본명인 그는 195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아침>을 통해 등단한다.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과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있다.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와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가 있다.

 

저자는 시가 그대에게 위로나 힘이 되진 않겠지만 소개하는 시들은 내 인생의 해안에 도착한 시들이라 말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나는 내가 누구이며 어디쯤 서 있는지 알기 위해 시를 읽는다. 삶은 불가사의한 바다이다. 우리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p.234~235) 우리는 함께 질문하고 공감함으로써 위로 받고 강해진다. 인생은 물음을 던지는 만큼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시의 의미는 종이에 인쇄된 단어만이 아니다. 독자와의 교감 속에 있다. 그래서 시는 시인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쓰고, 독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는 것인지 모른다.

 

이 책의 시인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불우하고 힘든 과거를 안고 살아 온 사람이다. 시들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시를 쓴 작가들의 경험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간다. 타인의 기대나 정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답을 이야기한다. 어떤 글도 본연의 자기를 다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삶에 대한 해답은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시는 삶의 특별한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의 시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 시는 삶의 진실을 대면하라고 속삭인다.” (p.171)

 

류시화는 말한다. “내 해설에 구애받지 말고 당신만의 방식으로 이 시들을 읽기 바란다.” (p.236) 그래서 책을 처음부터 3분의 1을 읽다가, 거꾸로 맨 뒤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앨런 건즈버그의 <너무 많은 것들>에서 경험한다.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그러나 너무 부족한 명상

 

너무 많은 분노

너무 많은 설탕

너무 많은 방사능

너무 적게 내리는 눈 (앨런 긴즈버그 의 너무 많은 것들중 일부)

 

페이지 188에 나오는 부분이 다 인줄 알았는데, 책장을 넘기니 앞 부분이 두 페이지에 걸쳐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진짜 <너무 많은 것들> 이구나! 감탄하게 된 것이다. 앞 부분은 굳이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너무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존재가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는 시다. 단순하게 감탄하며 사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나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약, 너무 많은 사랑, 너무 많은 고민, 너무 많은 아파트......, 너무 많은 것들 속에 살면서도 너무 결핍된 인생은 왜 일어나는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앨런 긴즈버그의 시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류시화의 시 해설은 특이하다. 시를 통해 삶의 성찰을 깨닫게 한다. 세계의 좋은 시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가 창작되는 과정이나 시인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준다. 저자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산문집의 머리말에서 말한다. “나는 스승을 찾아 나라들을 여행하고 책들을 읽었으나, 내게 깨달음을 선물한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생의 작가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이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지, 그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가 놓친 시선과 삶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마음에 남는 시들이 많고, 새로운 시각과 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라 고이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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