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악과 구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김희숙 옮김,문학동네,2022)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이전 작품(특히 죄와 벌)에서 다루었던 크고 작은 사상적 문제들의 총합이다. 그 사상적 문제들에 대해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성숙하고 완전한 답변이라 할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러시아 문학을 세계문학 속에 우뚝 서게 한 19세기 장편소설의 위대한 시대를 장엄하게 연 걸작이다. 사상적, 철학적 차원에서 너무도 방대한 이 소설을 1879년과 1880년, 2년 만에 썼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1846년 중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벨린스키의 격찬을 받는다. 1849년 ‘금요회’에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발언과 벨린스키의 금지된 글을 읽은 탓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는다. 처형 직전에 감형되어 시베리아에서 4년간 수형 생활을 한다. 1859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를 창간하고 창작 활동을 벌인다. 저서로 『죄와 벌』, 『백치』, 『악령』, 『지하에서 쓴 수기』 등 다수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도 없이 성장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가 집으로 돌아온다. 세 형제는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아버지를 동정하거나 혐오한다. 드미트리와 이반은 노골적이고 은밀하게 그의 죽음을 바란다.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되자 혐의는 그루셴카를 두고 연적 관계에 있던 장남 드미트리에게 쏠린다. 부친 살해를 구성의 정점으로 하여 세 아들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세 형제의 상반된 운명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걸까? 드미트리는 아버지로부터 육체적인 정욕을 물려받았으나, 표도르의 퇴폐적인 정욕과는 다르다. 그루셴카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성적이고 정열적이며 진지하고 희생적이기까지 하다. “저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방탕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선을 사랑했습니다.”(p. 3권478) 갱생의 길로 들어선 그는 자신이 죽이지도 않은 아버지의 살해에 대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려 한다. 드미트리는 러시아인으로서 갖고 있는 본성적인 신에 대한 믿음과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의 길로 나아간다.
둘 째 이반은 자유주의적 기질과 무신론, 허무주의를 품고 있다. 그는 이성적이며 반박하기 힘든 논리로 무장한 사상가이다. 이반은 알료샤와 대면하여 신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토로한다. 신은 인정할 수는 있지만, 신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고통이 진리를 사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고통의 총량을 채우는 데 쓰였다면, 미리 단언하지만 모든 진리를 다 합쳐도 그만한 값어치는 안 돼.”(p.1권 495)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죄 없이 고통 받고 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신의 세계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반은 자신이 말하는 ‘대심문관’의 서사시에서도 그리스도에게 반기를 든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신을 부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에 대해 굉장히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가 궁극적으로 희망하는 인물이 알료샤인가? 그는 살아 숨 쉬는 이웃에 대한 능동적이고 진정한 사랑의 실천자이다. 알료샤는 이반과는 대비되는 실천적 사랑과 함께 추상적인 인류애가 아닌 구체적 인류애를 실천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보다 삶 자체를 더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p. 1권 465) 알료샤는 수도원에 머물기보다는 세상에 나가 한 뿌리의 선행을 쌓으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랑과 희망을 주고자 한다. ”틀림없이 부활할 겁니다. 틀림없이 서로를 보게 될 것이고 그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기쁘고 즐겁게 서로에게 얘기할 겁니다. (p.3권 478) 도스토옙스키는 알료샤를 통해 죽음은 종말이 아닌 더 나은 새로운 삶의 탄생이고, 역사는 이렇게 발전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1880년 출간 이래 문학과 철학, 심리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 본성의 근원적 악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탐구에 놀랄 뿐이다. 인간의 정념과 충동, 이성과 논리, 종교적 신앙을 대변하는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들의 탐구가 압권이다. 러시아에서 무신론적 유물론, 기독교 신앙에 대한 논의가 치열했던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예언적 통찰력이 얼마나 깊은 지 경험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