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갈(飢渴)
김훈 작가의 소설집 『강산무진』 (문학동네, 20106) 중 단편 소설 〈화장(火葬)〉은 200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 특유의 사물과 사람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구체적이다.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가차없이 매우 차분하고 자세히 설명한다.
〈화장(火葬)〉에서 주인공은 재벌급 화장품회사에서 상무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립선염으로 자주 고통을 호소한다. 오줌이 빠지지 않는 주인공의 몸은 무거웠고 비뇨기과에서 도뇨관을 꽂고 오줌을 빼내야만 가벼워진다. 그의 아내는 뇌종양 발병으로 몸의 살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 뼈와 가죽뿐인 상황이며 임종 직전이다. 검불처럼 늘어져 있던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치는 아내는 아이스크림과 더운밥에서 구린내를 느끼며 구토를 일으킨다. 아내는 똥을 흘릴 때마다 똥냄새와 약냄새의 악취 속에서 연명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오상무는 투쟁 중인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회사 여직원 추은주를 남 몰래 마음에 두고 있다. 추은주의 모습은 아내와 정반대다. 그 여자는 젊고, 생기있는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꼭 닮은 아이에게 밥을 먹여줌으로써 생명력을 나눠주는 모습에 주인공은 매료된다. 소설 마지막에 아내는 결국 숨을 거둬 화장(火葬)을 치른 후 한줌의 재가 되고, 추은주는 워싱턴으로 발령을 받아 가는 남편을 따라 회사를 그만둔다. 주인공은 선전과 광고에 적용될 리딩 이미지의 문구를 ‘가벼워진다’로 결정짓고는 의식이 허물어져내리고 증발해버리는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며 이야기는 끝난다.
“간병인이 아내를 목욕시킬 때 보니까, 성기 주변에도 살이 빠져서 치골이 가파르게 드러났고 대음순은 까맣게 타들어가듯 말라붙어 있었다 나와 아내가 그 메마른 곳으로부터 딸을 낳았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었다.”(p.34) 표현에서 보듯이 주인공의 아내를 보고 느끼는 심정에서 김훈 작가는 불유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p.75)라며 주인공 오상무의 마음속에 조바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파트의 신입 여사원 추은주에 대한 표현 대목은 김훈 작가의 화려한 문체에 매료될 만한 문장력을 보여준다.
〈화장(火葬)〉은 주인공이 젊은 여자인 추은주를 단순히 사랑한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즉 회장품회사의 상무인 주인공이 사회초년병인 파릇하고 풍성한 젊은 여인에 대한 호감을 사랑이나 동경이라고 쉽사리 본다면 작품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2년에 걸친 죽음을 향해 투병 중인 아내와 젊은 추은주의 등과 엉덩이의 완연한 몸에서 느끼는 세상 속으로 밀치고 나오는, 살아 있는 것과의 대조를 보여준다 하겠다. 삶과 죽음을 대비해서 다루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김훈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삶은 곧 기갈(飢渴)인 것인데, 그 배고픔의 목마름이 돌이킬 수 없는 생로병사의 길이라 하더라도 문학은 저 불가능들의 편이 아니라 기갈의 편이라야 마땅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생로병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에 그것이 다 뒤엉켜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화장(火葬)〉에서도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 속을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飢渴)’이나 허기일 것입니다.”(p.54)라고 주장한다. 죽음이라는 이별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 〈화장(火葬)〉은 실제로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