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의 『축복을 비는 마음』 (문학과지성사, 2023)은 집에 관련된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집을 둘러싼 우리들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집값 상승과 하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부동산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다. 집이 가족의 쉼터와 편안함의 요소가 아닌 숫자로 값을 매기는 상품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집’과 관련한 사연들은 이 소설집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축복을 비는 마음』에 나오는 집은 머물고 안식하는 장소이면서 어떤 위로와 온기를 선사하는 상징성도 담고 있다.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과 짧은 소설집으로 『완벽한 케이크의 맛』이 있다.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과 장편소설로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등이 있다. 중앙장편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2021 ․ 2022년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다.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을 청소하는 두 여성 인선과 경옥이 등장한다. 인선은 짜증을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유형이다. 그녀는 밤에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독한 세제를 써서 가려움증이 피부를 덮쳐오기도 하는 열악한 청소 환경 속에서도 견딘다. 반면 경옥은 불합리한 사장의 행동을 따지고 추가 근무에 수당을 요구하는 당찬 여성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 사이였지만 청소 일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신뢰의 모습을 보인다. 경옥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이나, 돈은 똑같은데 몇 배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억울하거나 불행해지지 않으냐고 묻는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깨끗하게 청소해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 (p.270) 인선의 말속에는 스스로 위안을 찾는 애잔함이 묻어난다.
『20세기 아이』는 어린 여자 아이 세미의 시선으로 보는 동네 분위기와 세 놓은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초라한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몇 달만 있을 거라고 약속했던 엄마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 끝나가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할아버지도, 언니도.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어른들도 하나같이 말하는 법을 잃은 사람들 같다. 집을 보러 온 여자와 부동산 사장을 세미는 뒤를 계속 따라다니며 관심을 보인다. “네 덕분에 이 집이 아주 환하구나.” (p.61) 세미는 이곳에서는 아무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근사한 말을 듣고 놀란다. 무엇이 세미의 마음에 은목다리 저 편은 21세기이고 이곳은 20세기라는 관념을 심어 준 것일까? 예전의 가족들이 마당 한쪽에 숯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먹던 추억은 사라지고 부동산 개발로 사람들은 떠나고, 어린 세미는 어른이 하지 않는 집을 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의 팍팍한 현실에서도 희망은 있는가?
『목화맨션』은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에 계약이 성사된 집 주인과 세입자 간의 이야기이다. 몇 차례 임대차계약을 하면서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집주인 만옥과 세입자 순미가 주인공이다. 재개발이 될 줄 알고 샀는데 개발은커녕 계속해서 미뤄지고 그사이 남편은 쓰러져 입원한다. 당장 돈이 필요한 만옥은 세입자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집을 판다. 순미에게 나가달라고 해야 하는데 만옥은 머뭇거린다. 순미가 이사나가고 나서 이후로도 종종 안부를 전해왔지만 연락이 뜸해지더니 곧 소식이 끊긴다. 그로부터 얼마 더 지나 만옥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목화맨션 일대가 철거된다는 뉴스를 본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것이 다만 눈에 보이는 저 낡은 주택들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 (p.104) 만옥은 목화맨션의 철거되는 것보다는 순미와 처음 냉면을 먹었던 좋은 시간들을 다시는 함께 못하는 지금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집도 필요하지만 사람 사는 온기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축복을 비는 마음』에는 이외에도 집에 관한 여러 편의 소설이 나온다. 개발을 앞둔 쇠락한 동네의 현실, 빌라 투자를 위해 달동네를 돌아다니는 여성 등 우리 주위의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공통인 점은 집보다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집을 둘러싼 인간이 살아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녀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전에 읽고 행복은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특권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신선한 충격을 경험했다. 『축복을 비는 마음』에도 저자의 매력이 숨어있다. 현대 사회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고민과 혼돈 속에서 상대적으로 힘겨워하는 소시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을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로 풀어내는 저자의 상상력을 만나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