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대하는 자세
대구 김종협
2023년 1월 독서모임책이 김지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림원, 2021)이다. 초대 문화부장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이어령 선생의 다양하고도 울림 있는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어령 선생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몇 가지 찾아낸다는 것과 작가 김지수의 생각은 무엇인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만큼 이런 책의 서평 쓰기란 대단히 어려움을 요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쓰지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몇 자 적어본다.
이어령은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에서 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다.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으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축소지향의 일본인』, 『생명이 자본이다』, 소설 『장군의 수염』 등이 있다.
작가인 김지수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 후 〈조선비즈〉에서 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5년부터 진행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어령 선생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2009년에 대구시 중구 수창동 KT &G 별관에서 강연한 내용이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있다. "시민들이 일본 문화의 잔재이기도 한 거리와 정원의 '회양목'을 뽑아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게 하도록 아이디어를 내는 것, 문화는 엄청난 것이 아니라 유연성을 갖고 패러다임을 바꾸면 새로운 풍경이 생겨난다"라고 주장한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주변 도시 소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 등에 회양목이 그대로 심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된 관심사는 ‘죽음’을 앞 둔 이어령의 선생의 마음 자세이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p. 294)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일까? 암으로 고통을 겪는 것까지가 자기 몫이라고. “생각은 있으나 글을 못 써. 그게 죽음이야. 내 모든 지식, 생각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더군. 다 지워버렸어. 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였어. ” (p.63) 이렇게 선생은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받자 주장한다.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태연하고 침착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소크라테스의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이어령 선생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일맥 상통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어령은 북트레일러에서 주장한다. “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못 했던 말, 또 격식이 있었기 때문에 삼가던 말을 오순도순 이야기 하듯이 말한 것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에는 더욱 더 진실성이 담겨 있음을 알게된다. 이 책에는 사랑, 용서, 종교, 과학, 인문 등 다양한 주제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김지수는 소크라테스를 기록하려던 플라톤의 마음으로 글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라고 고백한다. 교수, 지성인으로서의 이아령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의 이어령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작금의 우울한 시대에 잔잔한 마음을 보듬는 시간을 안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