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

by 글 쓰기 2024. 4. 28.
728x90
반응형

 

결국 향하는 것은 시인 자신이다

 

 

일제강점기와 근대를 대표하는 천재 시인 백석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재구성한 소설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 2020)이 그것이다. 김연수는 1993<작가세계> 여름호에 시 강화에 대하여외 네 편이 당선되면서 등단한다. 1994년에는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를 한 작가다. 소설은 기행(백석의 본명)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가혹한 체제 아래 꺾어버린 한 작가의 절망이나 불행이 아닌, 마지막 의지와 희망의 꿈에 대해 담아내고 있다.

 

 

소설 속 기행은 남쪽에서는 유명한 시인이었고, 월북 뒤에는 당으로부터 예의 주시를 당하면서도 아동문학가이자 소련 문학 번역가로 활동을 하게 된다. 당에서 지속적으로 혁명시를 요구 하지만 기행은 시도는 하고 끝내 쓰지 못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결국 자백위원회를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노동 계층을 직접 겪고 느껴보라는 취지로 삼수의 관평협동조합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즉 기행이 1956년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1962년까지 약 7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일곱 해의 마지막이란 작품이다.

 

 

기행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시선이 풍부하고도 따뜻한 언어로 표현되는 시가 아닌, 체제와 이념을 대변하고 때론 억세고 또 단단한 글을 지을 것을 강요당하는 날들이 그에게 반복된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시인임을 알기에 더욱 철저하게 조여왔던 국가의 검열과 간섭 그리고 결국 절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다. 김연수 작가는 시를 못 쓰게 된 이야기가 아닌 안 쓰게 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일까? 당시의 분단 체제와 분위기 속에서 작가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주인공 기행의 입장에서 느껴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며 서희가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은 쇠도끼 날처럼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p.196)

 

 

작가는 쓰고자 하는 욕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행의 내면을 드러낸다.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도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과 희망이 있음도 분명 강조한다. 시를 쓰고 쭉 읽은 뒤 종이를 직접 난로에 넣고 그 불꽃을 바라보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기행의 꿈은 종잇장과 함께 그 시도 포르르 타오르다 이내 사그라 든다. “글자들이, 문장들이, 사투리와 비유들이 저마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보기가 참 좋았다.” (p.207) 또한 김연수 작가는 소설 속 천불 속에서 생을 향한 어떤 뜨거움 내지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천불을 보고 두메의 화전민들은 생을 향한 어떤 느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불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살길이 열리는 것이기에. 천불을 바라보며 흥분한 청년 옆에 서 있자니 기행의 가슴도 은은하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p.238)

 

 

백석은 토속어와 사투리를 많이 활용해서 남다른 말맛과 정서를 전달하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백석의 발자취와 행적들에 관한 김연수 작가의 감탄할 만한 문헌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색깔이 입혀져 있어서 백석에 대한 상상력의 깊이를 더해준다. 작가는 백석시전집을 읽고 매료되어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방언을 바탕으로 한 개성 있는 백석의 시적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시를 꼭 읽어야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