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경험 !
대구 김종협
예전에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정초』 (김석수 옮김, 한길사,2019)을 읽으면서 ‘순수실천이성’이란 용어 개념이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워 힘들어 했었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우주의 신비를 논한 책이 있어, 칸트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집어 들었다.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20)이 그것이다. 저자가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을 독자에게 떨림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평이하게 물리학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김상욱은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상대론적 혼돈 및 혼돈계의 양자 국소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18년부터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의 양자 공부』와 공저로 『과학하고 앉아있네』가 있다.
책은 1부 분주한 존재들, 2부 시간을 산다는 것, 공간을 본다는 것, 3부 관계에 관하여, 4부 우주는 떨림과 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김상욱의 물리공부’를 기초로, 다른 매체에 쓴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과 저자가 보는 물리의 모습을 자세하게 말해준다.
먼저 저자는 인문학의 느낌으로 물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자 칸트는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에서 우주에 시작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정당화될 수 있어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즉 이성으로는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주의 시작점에 대한 질문을 과학적 탐구대상으로 만들었다. 상대성이론에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말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뜻이니,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는 거다. 바로 빅뱅이론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이 선험적으로 갖는 인지구조라고 보았는데, 시공간을 인지하는 틀이 과학적으로 추론된다니 놀랍다. 그래서 사유의 틀을 제공하는 철학과는 달리 과학은 실험적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과학자의 지식인으로서의 태도를 꼬집는다.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를 대하는 자세이자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물질적 증거에 입각하여 결론을 내리는 태도라는 것이다. “종교나 철학은 자신의 이론으로 때론 지나치게 많은 것을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과학자가 보기에 그냥 모른다고 했으면 좋을 부분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p.269)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무지를 인정한다는 것은 아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한다.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질적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과학적 태도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실험적 태도인가? 그리고 무지의 자각은 소크라테스의 주된 주장인데, 김상욱 저자가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가?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물리를 공부하며 경험한 것들을 독자에게 대중적으로 풀어 설명한다. 어려운 과학 개념을 설명할 때 적절한 인용과 비유로 재미있고 쉽게 묘사한 부분이 군데군데 나온다. 정육면체 퍼즐인 ‘루빅스 큐브’ 예시 (p.110)는 좋은 사례다. 시간은 왜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 법칙)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방향성은 엔트로피가 작은 상태에서 커지는 쪽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큐브의 색이 흐트러지는 것은 정말 수없이 많은 경우가 가능하다는 상황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다니!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힘쓴 노력이 엿보인다.
저자는 ‘떨림’과 함께 물리학의 기본이 되는 현상은 ‘울림’이라고 한다. 음악은 그 자체로 떨림의 예술이지만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함께 떤다라는 점에서 인간은 울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과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는 저자의 주장과 그 울림의 감동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