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00)는 문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끈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이 소설은 1932년 알버트 레이 연출로 영화화된 이래 지금까지 20여편 가까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1951년에는 오페라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연극, 만화로 각색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플로베르는 1821년 프랑스 소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외과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질병, 죽음의 분위기를 체득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겪었다. 1843년에는 간질로 추정되는 신경발작을 계기로 학업을 그만두고 루앙으로 돌아와 요양을 하며 집필에 전념한다. 저서로는 『감정 교육』, 『성 앙투안의 유혹』, 『살람보』, 『순박한 마음』 등이 있다.
주인공 엠마는 프랑스 북부 루앙 부근의 부유한 농가의 외동딸이며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꿈을 품은 아름답고 정열적인 여성이다.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을 하지만 곧 환멸을 느낀다. 바람둥이 루돌프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간단하게 정복해 버린다. 그러나 그녀가 열정적으로 다가오자 그녀와의 관계를 끊는다. 엠마는 절망하였으나 이후에 젊은 서기 레옹을 사랑하며 밀회를 즐긴다. 하지만 가사를 돌보지 않고 남편 몰래 낭비한 빚 때문에 결국 비소를 먹고 자살해 버린다. 이 소설은 단순히 불륜을 저지른 후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플로베르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그래서 이해하기가 쉬운 책이 아니다.
저자는 허영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마치 본질인양 주장하는 인물들의 어리석음을 강조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돈과 사랑이라는 허영을 좇아야 했던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는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낭만적인 책에 등장하는 행복과 정열을 좇는 여자인 것이다. 그래서 엠마는 느낌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은 믿지 못하고, 그것이 통속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엠마 이외의 인물들 역시 지적 허영이라는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다고 플로베르는 주장한다. 신부와 오메의 갈등은 겉보기에 첨예하고 대단히 중요한 이념 간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에게 믿음이나 이념은 단지 허영일 뿐이라는 것이다. 속물적인 존재들 때문에 내동댕이쳐진 가치들을 소리 높여 외친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당시 속물화된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감정적 욕구를 당장에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나 다 무용한 것이라 하여 물리쳤다.” (P 58), “그녀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물질적 사치의 쾌락과 마음의 기쁨을 혼동하고, 습관에서 오는 우아함과 감정의 섬세함을 혼동하고 있었다.” (p 90)
플로베르는 그 시대의 과학 사상에 영향을 받아 냉엄한 관찰, 정밀한 묘사, 객관적 표현을 목표로 사실적 수법과 문체를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사실적인 묘사와 화려한 상상이 넘치는 세계를 표현한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이 작품은 실제로 있었던 어느 개업의(開業醫)의 아내 자살 사건을 취재하여 5년간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사실주의 소설의 전형적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문장을 갈고 닦는 고통스러운 노력을 실행한 사람이다. 다음의 한 문장을 보더라도 저자의 정밀한 묘사, 문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날의 애정이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히 넘쳐흘러 고광나무 향기에 실려오는 감미로움처럼 지긋이 마음속에 되살아나면서 풀위에 가지를 늘어뜨린 채 가만히 서 있는 버드나무의 그것보다도 더 크고 더 우울한 그림자를 그들의 추억 속으로 투영하고 있었다.“ (P 287)
플로베르는 문체의 연속에 의해 이야기를 현실 그 자체에 접근하려고 시도한다. 인간의 행동이나 꿈을 순수한 감각묘사에 의해 이미지화하려고 노력하는 사실주의자의 대가로 인정받는다.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발언을 했다. “마담 보바리, 그것은 바로 나다.” 작가라는 것은 주인공 엠마처럼 결국 좌절될 수밖에 없더라도 꿈을 꿀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감동을 주지 않는 고전 문학은 없지만, 『마담 보바리』만큼 문장 하나하나에서 깊은 의미와 감동을 던져주는 책이 있을까? 나중에 다시 읽으면 어떤 맥락으로 다가올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