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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by 글 쓰기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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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삶이어도 행복할 자격은 있다

 

 

 

삶은 고뇌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역사가 쓰인 이래 늘 그래왔다. 고달픈 현실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일상인 것이다. 여기 생의 비극적인 요소에 처절하게 노출되어 있는 내용의 소설이 있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 중 첫 번째 단편소설인 봄밤이 그것이다. 작가 권여선은 1996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다. 권여선 작가의 문체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평가되며,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이효석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를 수상한다.

 

뼈가 무너져 내리는 수환이 있다. 그리고 술에 잠식해가는 영경이 있다. 수환과 영경은 12년 전 마흔셋 봄에 친구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난다. 둘은 사랑하지만 죽음으로 내달리고 있다. 죽음이 예비된 장소이기도 한 지방 요양원에 함께 입주한다. 영경의 몸을 처음 업었던 봄밤처럼, 수환이 영경에게 외출을 허락한 날도 어느 봄밤이다.

 

표현은 쉽고 단편의 소설이지만 의미는 깊이 있게 다가온다. 저자의 주장은 비극적인 삶이어도 행복할 자격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비극의 기준은 그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지, 납득할 수 있을 지와 그 비극을 내 삶으로 들여올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깊은 상실을 느끼거나 이별을 한 후에 죄책감 내지 자책을 안 한다는 것이다. 어두워지지 않고 자신의 삶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모습이 조금은 보여져서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그가 조용히 등을 내밀어 그녀를 업었을 때 그녀는 취한 와중에도 자신에게 돌아올 행운의 몫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해했다.” (p. 28)

 

또한 이 소설은 생명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생명이 존재함으로 인해서 기뼜던 순간들을 자신이 반추해서 감각하기도 한다.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하고 생각하다 영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p.33) 살아있는 한은 언젠가는 웃기도 하고 기쁨에 젖기도 하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이 평온과 비극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고 나서 궁금해졌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이 책 말미의 신형철의 해설이 와닿는다. “내가 아니면 그의 결여를 이해할 사람이 없고 그가 아니면 내 결여를 용납해줄 사람이 없다 여겨진다. 이런 관계를 사랑의 관계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p.261)

작가 권여선은 짧은 분량이지만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애써 어두운 것을 희망적으로 포장하지도 않고 그냥 덤덤하게 드러내서 제시해준다. 이것이 더 슬프기도 하고 뭔가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를 사는 우리에게 한번쯤 읽어 볼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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