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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글 쓰기 2024. 5. 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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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요즘 경기가 불황이고 물가가 높아 소상공인들이 문을 닫는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과일 값이 치솟아 서민들이 사는데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경제 문제는 항상 관심사인 것 같다. 이에 도움을 주는 책이 있다. 1950년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대량생산에 의한 대량소비사회의 진행,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 소비량의 증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의 대규모화와 거대 조직화의 문제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고 여러 나라로 강연을 다녔던 사람이 있다. 그의 강연을 에세이 형태로 모은 책이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상호 옮김, 문예출판사, 2002)이다.

 

 

슈마허는 독일에서 태어나 1930년 로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옥스퍼드 뉴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독일,영국, 미국에서 슘페터, 케인스, 윌리스 등 저명한 학자로부터 경제학을 배웠다. 특히 제3세계의 경제 개발에 관심이 많았고, 버마 정부의 경제 고문 및 인도, 페루,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도 방문한다. 주요 저서에 혼돈으로부터의 도피, 좋은 직업, 경제 성장의 근원등이 있다.

 

 

저자는 유한한 자원을 무작정 써버리는 것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경고한다. 과학기술의 경이로운 성과에 힘입어 무한한 힘에 대한 맹신이 생겨났으며, 이는 동시에 생산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환상을 낳았다. 이러한 오류는 소득과 자본의 구분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고, 둘의 구분에 익숙한 경제학자와 사업가들까지도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제공된 자본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그것을 자본으로 인정하지 않고 소득으로 취급한다. 자본의 대부분은 자연으로부터 부여 받는 것이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이 제공하는 허용한도, 즉 특정한 종류의 대체 불가능한 자본, 자산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이렇게 훨씬 큰 부분이 놀라운 속도로 고갈되고 있는데, 생산문제가 풀렸다고 믿고 그런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게도 자신을 살해하는 오류이다.” (P.23)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연료나 자원에 대한 그 시대 슈마허의 통찰이 경이롭다. 지금도 해결이 불투명한 원자력 방사성 폐기물의 저장에 대한 언급은 대단한 것 같다.

 

 

슈마허는 대규모 조직을 무조건 선호하는 일과 인간의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대량 생산 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한다고 말한다.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에 기반한 중간기술을 주장한다. 중간 기술이란 지식과 경험을 잘 활용하여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게끔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기술을 말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며 인간의 손과 머리를 활용한 생산적으로 일하도록 도와주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1966년 런던에서 슈마허의 주도로 중간기술개발집단이 설립되기도 한다. 이는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 (p.204) 더 작은 소유, 더 작은 노동 단위에 기초를 둔 소규모 작업장이야말로 경제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온다고 피력한다. 이것은 책의 핵심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슈마허의 일관된 여정인 작은 것은 자유롭고, 창조적이고, 효과적이며, 편하고 즐겁고 영원하다.”와 상통한다.

 

 

또한 저자는 책에서 메타경제학을 적용해 그 실천 방안으로 불교경제학을 예로 든다. 부의 근본 원천이 인간의 노동이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불교 관점에서 보면 노동의 역할에는 적어도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즉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공동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극복하는 것,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어기는 것은 범죄의 행위나 다름없으며 악행으로 여겨진다. 불교경제학은 물질주의 경제학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불교가 운명의 본질을 욕망의 증식이 아니라 바로 인간성의 순화에서 찾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교경제학의 핵심을 소박함과 비폭력으로 보았다. 슈마허는 1955년 버마 정부의 경제고문으로 초빙되어 체류하면서 많은 불교 신자와 교류하고 불교에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그의 실제 실천적인 삶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에서 슈마허는 작은 것을 제시하며 경제학의 당면 과제는 성장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이 망쳐놓은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한다. 현대 환경운동사에서 최초의 전체주의적 사상가였던 슈마허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자그마한 경제의 규모를 주장한다. 그렇게 될 때 쾌적한 자연 환경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하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거의 50년 전에 전세계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준 슈마허의 예견이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의 경제적 비능률, 환경오염, 자연의 불균형 상태, 비인간적인 작업 조건들을 생각해 볼 때 슈마허의 책에서 조금이나마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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