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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글 쓰기 2024. 3. 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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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연민

 

대구 김종협

 

처음 길을 내고 시작하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가 먼저 길을 낸 곳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이 어렵고 위대하다. 입으로 전해져 온 이야기를 글로 최초로 집대성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천병희 옮김, , 2015)가 그렇다.

그리스 신화는 모든 인류의 꿈과 신념의 원형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유럽 문화의 구석구석에 언어로서, 전설로서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 신화들 중에서 트로이 전쟁이 유명하다. 이를 서사시로 음송하여 그리스인의 마음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던 것을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가 창작한 것이다. 이 책은 서구 문학과 문화의 뿌리이다. 그리스인들은 문학을 처음 접할 때 무엇보다도 먼저 일리아스를 읽는데, 그들은 이것을 단순한 문학이 아닌 생활과 행동의 본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B.C. 900 ~ 900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다. 그의 활동 시기 및 지역은 불분명하지만, 오늘날 터키 서부 지역인 이오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음유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늙어서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다. 일리아스오디세이아외에 작품으로 호메로스 찬가마르키데스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장대한 서사시는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p.25)로 시작한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한을 첫 장의 첫 머리에 강조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비상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일리아스는 일리오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고,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트로이 전쟁이라고 하면 영웅담이나 전투 장면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일리아스에 나오는 전쟁에는 영웅도 영광도 크게 부각하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등장인물들을 전설 속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속에서 창조한다. 그래서 인물들은 영웅이라기보다는 보통사람에 더욱 가깝다.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우리에게 친근하면서도 진한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리라. 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여신이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p.599)

천하의 아킬레우스도 인간이기에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암시한다.

 

 

당시 온갖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명예였다. 명예만이 모든 것을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참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잣대가 없던 상황에서 동시대인들과 후세 사람들의 평판이야말로 유일한 가치 척도였던 것이다. “아아! 이제야말로 신들께서 나를 죽음으로 부르시는구나. 하지만 내 결코 싸우지도 않고 명성도 없이 죽고 싶지는 않다. 후세 사람들도 들어서 알게 될 큰일을 하고서 죽으리라.” (p.633) 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외부적인 힘들은 인간사에 깊이 개입해, 때로는 인간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운명이 갈리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옛 그리스 전사들은 그 운명을 한탄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등장 인물들은 그 운명을 피하려 애쓰기도 하고 그 운명을 극복하려 애쓰기도 한다. 호메로스는 헥토르의 고백에서 인간의 운명속에서도 명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죽음을 당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살면서 명예를 남기며 자기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당시 그리스의 문화는 신을 경배할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적절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적절하게 묻어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름난 헥토르의 장작더미 주위로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 (p.714) 장례 기간에는 전쟁도 잠시 멈춘다. 전쟁의 영광 뒤에 가려진 긴 애도의 자리를 가지는 것이다. 헥토르의 시체가 들어오자 트로이인들의 통곡과 한꺼번에 터지는 오열이 전쟁 뒤의 상황이 마지막에 깊이있게 묘사된다. 적장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이 밤에 아킬레우스의 진영을 찾아와 아들의 시체 반환을 간청하자 아킬레우스는 예의를 갖추어 공손히 이에 응한다. 이처럼 장례 문화의 중요성은 그리스인들과 트로이인들 사이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해서 헥토르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화를 내고 토라지고 인간과 너무나 닮은 신들과 전쟁과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다양한 태도와 운명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오늘날 일리아스를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일리아스는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사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통찰력을 길러 주는 무한한 지혜의 내용을 간직해서 더 가치가 있다. 일리아스를 수식하는 말은 많고 많다. 직접 작품을 만나보면 서사시의 원천답게 직유의 시적 장치와 자연 경관의 은유적인 묘사가 인상깊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인간으로서 겪는 모험과 인간이라고 불리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간적인 삶의 고뇌를 호메로스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일리아스가 많이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신들의 대화를 함게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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