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의 <순이삼촌>
심리적 고통
많은 사람이 현실 속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죽은 이가 느낀 고통의 핵심에도 쉽게 가닿지 못한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창비, 2009)은 30년 전 4 · 3사건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문학으로 이해하게끔 쓴 작품이다.
나이 26살에 혼자 몸이 되어 30년 긴 세월을 수절하며 지내온 순이 삼촌이 있다. 삼촌이라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분없이 삼촌이라 부른다. 화자는 할아버지 제삿날에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몇 일 전에 순이 삼촌이 세상을 등졌다는 슬픈 소식을 접한다. 순이 삼촌은 30년 전 부락 학살을 당할 처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지금은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자신의 밭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사건과 기억이 강렬할 경우 그 기억은 개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순이삼촌이 그렇다. 옴팡진 밭에 붙박인 인고의 30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삼촌은 그렇지를 못한다. 그 누구도 순이삼촌만큼 후유증(트라우마)이 깊은 사람은 없다.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순이삼촌의 숙명이다. 소설 속에서 군인이나 순경을 봐도 지레 피하던 신경증세와 누가 뒤에서 흉보지 않나 하는 환청증세까지의 순이삼촌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다. 다만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劉豫)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p.86)
기억은 같은 사건일지라도 주체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고모부는 말한다. “전투사령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행동했댄 해도 작전명령을 잘못 해석하였을 공산이 커.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이 인원과 물자를 안전지역으로 후송하라는 뜻이 인원을 전원 총살하고 물자를 전부 소각하라는 것으로 둔갑하고 말았이니 말이여.” (p.67) 당시 토벌군으로 애월면에 가 있던 고모부가 서촌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길수형이나 화자인 나와는 다르게 기억한다. 이는 고모부가 서촌 부락민의 학살을 직접 경험을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부락민)들은 자신의 기억과 다르게 구성된 가해자(군인)들의 기억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책임을 모면해 볼려고 둘러대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 토벌군의 논리에 대해서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이 책에서 길수형의 대사에서 약간의 희망을 가져본다. “앞으로 20년만 더 있어봅서. 그땐 심판받을 당사자도 죽고 없고, 증언할 분도 돌아가시고 나민 다 허사가 아니우꽈? 마을 전설로는 남을지 몰라도.”(p.71) 누가 뭐래도 마을 학살은 명백한 죄악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다.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다. 현기영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말한다. “ 4 · 3사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서는 문학을 한 치도 진전시킬 수 없다는 강한 느낌이 와요. 수많은 원혼을 달래는 무당의 자세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명백한 범죄행위는 거듭해 지적되어야 하고, 언어적 형상화를 통해 끝없이 환기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 소설을 읽고, 참혹한 역사적 사건에서 심리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