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자신에게 이르는 길
대구 김종협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전영애 옮김, 민음사,1997)은 청춘의 바이블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동시에 영향력이 큰 작품이다. 헤세는 데미안이라는 이름을 어느 날 꿈속에서 생각해 냈다고 한다. 다이모니온(Daimonion)은 소크라테스가 듣곤 했다는 신비한 내면의 목소리이고, 독일어 단어 데몬(Damon)은 선악을 넘어선 영적 존재로 인간 속에 내재하는 초인적인 힘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단어들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니체의 사상과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 분석학에 관심이 많았던 헤세의 작품이기에 『데미안』이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헤세가 직접 접해 보고 깊이 공감하게 된 정신 분석학적 방법론을 이 작품에서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킨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외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현상들, 꿈과 환상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에서 도망친 뒤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사원으로 일했다. 열다섯 살에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험난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 다수가 있다.
부모의 보호 아래 모범적으로만 자라온 소년 싱클레어는 낡은 규범들의 속박에 괴로워하며 그것들과 마주한다. 이 돌파구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더 나이 들고 더 경험 많은 데미안을 만난다.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을 얘기함으로써 악동 크로머에게 혹독하게 시달리던 싱클레어를 데미안이 도와준다. 그 이후로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같이 굳어진 기존의 사고의 틀까지 깨게끔 알려주고, 싱클레어가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쳐 준다.
먼저 저자는 보편적인 인간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발견을 말하고자 한다. 온전한 자기가 되기 위한 고통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며 누구나 나름으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책을 시작하기 전 서문 맨 앞 모토에도 나와 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p. 9)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 과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영혼의 순례에서 싱클레어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 데미안이다. 아브락시스라는 선과 악의 세계를 합일한 신을 받아들이고, 에바 부인으로 표상되는 진정한 자아에 이르기까지 싱클레어의 이야기는 한 인간에게 기존 문화의 틀을 벗어나 주체적으로 홀로 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우리 인간은 자기 삶의 완성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개개인의 삶이 공허한 껍질이 되지 않으려면, 인간은 무엇을 알고 자신의 운명에 어떤 자세여야 하는가를 헤세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소설 후반부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입장과 그와 관련한 유럽에 관한 담론적 성격을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 서구 유럽 사회의 진단과 비판을 근간으로 새롭게 탄생되어야 할 유럽과 유럽인에 대해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즉 크게 보면 새로운 유럽인의 자기발견이며 그것을 찾는 과정인 것이다. 『데미안』은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유럽 중심적인 정치적 소설이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유럽의 불행은 결국 물질주의와 이에 반응하는 개개인의 자기 상실증에서 초래되었다는 인식이었다. 결국 개개인의 인간들은 극단적인 물질주의를 추구하다가 빠져든 정신의 공허에서 탈출하려고 잘못된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우러나오는 진실된 운명의 소리를 듣는 대신 모임을 만들고 떼를 지어 다니며 끼리끼리 합세하여 기염을 토하는 가운데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이것은 불안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상실을 가져오고, 이 자기 상실은 이성을 잃은 전쟁 가운데서 궁극적인 탈출구를 찾았던 것이다. 헤세는 세계 대전의 참상을 겪고 기존의 세계와 가치에 깊은 회의와 불신을 품게 된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정신 분석학에서 환자의 꿈이나 그가 그린 그림이 내면을 읽어내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처럼 싱클레어의 변화해 가는 내면 풍경을 그려 나가는 이 작품에서 그의 꿈과 그림들은 작품의 핵심적인 상징의 역할을 한다.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p.219) 이렇게 끝을 맺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영혼은 인간 무의식의 무한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의식의 지평을 넓혀 나간다. 이야기는 현실인 동시에 환상이고, 무의식적 환상이 실제 현실로 눈앞에 벌어지곤 한다.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으로 결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융의 영향을 받은 정신분석학적 측면과 철학적 성찰로 인도하는 헤세의 이 책은 꼭 간직해서 또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