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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글 쓰기 2024. 3. 29.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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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폭력과 우리의 시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민음사, 2008)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1974년 작품이다. 1975년에는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도 개봉되고, 학생들의 교재로도 선정되었던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한 여성을 둘러싼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을 고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언론의 폭력, 그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20대 중반의 카타리나 블룸 이라는 여자는 차이퉁지의 퇴트게스 기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화자는 220일 수요일부터 24일 일요일까지 닷새 간의 사건 과정을 이야기한다. 수요일 저녁 카타리나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낸다. 이튿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카타리나를 연행한다. 경찰 조사를 받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시대사의 인물)이 된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이 소설의 부제는 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언론은 흔히 대중의 알 권리라는 것을 내세워 개인의 사생활을 깊게 침해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카타리나 블룸처럼 개인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과잉 취재가 이뤄질 수 있다.

 

소설에서 충격적인 헤드라인을 개재한 신문차이퉁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악명 높은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이 책에서 카타리나 블룸의 살인이라는 눈에 보이는 폭력을 중심으로 그녀가 겪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즉 언론의 인격 살인의 참상을 얘기한다.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극도의 변태에 가깝다.”(p.117) 이런 기사 글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모든 문제가 차이퉁신문사의 퇴트게스 기자만의 책임일까?란 생각도 든다. 차이퉁같은 황색 언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움샤우라는 정론지는 카타리나 사건을 두고, “전혀 결함 없는 사람이 사건에 불운하게 연루되었다.”라고 보도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을 기반으로 한 진짜 뉴스는 자극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않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리고 만다. 언론의 문제도 있지만, 그에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또한 문제이다. 뉴스를 보는 우리가 곧 뉴스의 수준을 만들어 간다는 관점에서 조금 더 냉철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요즘 SNS나 유튜브로 쉽게 댓글을 달고 뉴스를 만들어서 배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언제든지 퇴트게스 같은 기자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론을 대하는 시선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언론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당하는 일은 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부 언론사의 사실 확인 없는 편향적이고 악의적인 보도로 국민의 알 권리가 훼손되고, 사회적 불신은 점점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행태의 보도를 일삼는 언론을 기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부 언론이 공정을 훼손시키며,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우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단순히 언론을 접하는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인된 입장에서 비판하고 감시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언론이 과잉 취재와 거짓 왜곡된 보도를 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언론 감시에 대한 공감대가 절실하다고 본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작가 뵐은 많은 작품에서 현실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비판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체험이나 동시대적 현실 인식을 강조해 왔다. 하인리히 뵐은 분명히 이 소설을 통해서 언론의 막강한 권력과 그 절대 권력에 의한 폭력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 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교황이 직접 소송을 걸고자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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