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언론의 폭력과 우리의 시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2008)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1974년 작품이다. 1975년에는 폴커 슐렌도르프에 의해 영화도 개봉되고, 학생들의 교재로도 선정되었던 베스트셀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한 여성을 둘러싼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을 고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언론의 폭력, 그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20대 중반의 카타리나 블룸 이라는 여자는 ≪차이퉁≫지의 퇴트게스 기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이 살인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화자는 2월 20일 수요일부터 24일 일요일까지 닷새 간의 사건 과정을 이야기한다. 수요일 저녁 카타리나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낸다. 이튿날 경찰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카타리나를 연행한다. 경찰 조사를 받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시대사의 인물)이 된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이 소설의 부제는 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언론은 흔히 대중의 알 권리라는 것을 내세워 개인의 사생활을 깊게 침해하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카타리나 블룸처럼 개인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과잉 취재가 이뤄질 수 있다.
소설에서 충격적인 헤드라인을 개재한 신문≪차이퉁≫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악명 높은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이 책에서 카타리나 블룸의 살인이라는 눈에 보이는 폭력을 중심으로 그녀가 겪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즉 언론의 인격 살인의 참상을 얘기한다.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극도의 변태에 가깝다.”(p.117) 이런 기사 글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모든 문제가 ≪차이퉁≫신문사의 퇴트게스 기자만의 책임일까?란 생각도 든다. ≪차이퉁≫같은 황색 언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움샤우≫라는 정론지는 카타리나 사건을 두고, “전혀 결함 없는 사람이 사건에 불운하게 연루되었다.”라고 보도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실을 기반으로 한 진짜 뉴스는 자극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않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리고 만다. 언론의 문제도 있지만, 그에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또한 문제이다. 뉴스를 보는 우리가 곧 뉴스의 수준을 만들어 간다는 관점에서 조금 더 냉철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요즘 SNS나 유튜브로 쉽게 댓글을 달고 뉴스를 만들어서 배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언제든지 퇴트게스 같은 기자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론을 대하는 시선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언론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당하는 일은 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부 언론사의 사실 확인 없는 편향적이고 악의적인 보도로 국민의 알 권리가 훼손되고, 사회적 불신은 점점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행태의 보도를 일삼는 언론을 기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부 언론이 공정을 훼손시키며,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우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단순히 언론을 접하는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인된 입장에서 비판하고 감시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언론이 과잉 취재와 거짓 왜곡된 보도를 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언론 감시에 대한 공감대가 절실하다고 본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작가 뵐은 많은 작품에서 현실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비판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체험이나 동시대적 현실 인식을 강조해 왔다. 하인리히 뵐은 분명히 이 소설을 통해서 언론의 막강한 권력과 그 절대 권력에 의한 폭력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 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교황이 직접 소송을 걸고자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