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지식이란 무엇인가?
대구 김종협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50년이 넘는 기간에 소크라테스가 대담을 주도하는 20편 이상의 철학적 대화편을 출판한다. 플라톤의 저술은 편의상 초기작, 중기작, 후기작으로 구분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작,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테아이테토스』 등으로 대표되는 중기 대화편이 있다. 그리고 『필레보스』, 『티마이오스』, 『소피스트』, 『크리티아스』 등으로 대표되는 후기 대화편이 있다. 이 중에서 중기 대화편인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천병희 옮김, 숲, 2016)를 읽어 보았다.
『테아이테토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심오한 인식론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어 왔다. 『테아이테토스』는 ‘지식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에 걸맞게 대화에서는 ‘지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중단 없이 일관되게 탐문한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가장 명확하고 단일한 주제로 묶여 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사형당하기 직전의 노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당시 10대 소년이던 아테나이의 기하학자 테아이테토스와 지식의 본성을 논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역할은 남들이 자신의 생각을 분만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산파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테아이테토스는 자신이 지식이라고 알고 있던 것을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테아이테토스의 주장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밝혀진다.
소크라테스 : 테아이테토스, 지식(episteme)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해보게.
테아이테토스 : 지식은 다름 아니라 감각적 지각입니다. (p.39)
이렇게 지식에 대한 테아이테토스의 첫 번째 정의에 대한 대화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의 정의에 대해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 및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과 연관시킨 뒤, 잘못되었음을 비판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감각할 때 사용하는 수단(눈, 귀)과 감각적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영혼)을 구별하려 한다. 그래서 진리는 몸을 통한 경험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영혼 자체를 통해 있음(ousia)에 적중할 때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테아이테토스의 두 번째로 시도하는 정의는 “참된 판단은 지식이겠지요."(p.116)라는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거짓된 판단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거짓된 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역설’을 먼저 다룬다. 즉 세 가지(착오 판단, 밀랍 서판, 새장) 모델을 제시해서 거짓된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들 모델 역시 또 다른 난점을 안고 있어 명확한 설명이 되질 못한다. 거짓된 판단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것은 초기부터 후기까지 지속되는 대화편에 자주 나오는 플라톤의 관심사이다. (『에우튀데모스』, 『크라튈로스』, 『소피스트』 대화편에도 나옴) 그래서 거짓된 판단의 가능성을 해명하는 일과 지식을 추구하는 일 사이에 어떤 내적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정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시도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위해 재판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남들이 전하는 소문만 듣고 배심원이 참된 판단을 하여 판결했다고 가정해보세. 그럴 경우 그들은 지식 없이 판결한 것일세.” (p.148) 재판의 정당한 절치에 따랐다고 해서 거짓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못한다. 즉 오류 가능성이 배제되지는 못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비판한다.
두 번째 정의가 실패로 드러나자, 테아이테토스는 갑자기 꿈에서 들은 이야기로 “지식은 설명(logos)이 수반된 참된 판단이다.”(p.149)라고 주장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제시한다. 즉 ‘꿈 이론(theory of dream)'이라고 부르는데, 그 핵심은 설명의 있고 없음이 지식(episteme)의 있고 없음을 함축하는 것이고, 따라서 복합체는 인식될 수 있는 것이고 요소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정의는 두 번째 정의로 환원되거나 아니면 순환적이게 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려는 『테아이테토스』의 힘겨운 논의는 난관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테아이테토스, 자네가 앞으로 다른 생각들을 임신하려다가 임신에 성공하면 지금의 이 탐구 덕분에 더 훌륭한 생각들을 임신하게 될 걸세.” (p.169~170)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 말미에 산파술 언급으로 마무리한다. 『테아이테토스』에서 제시되는 철학의 시작은 산파술과 일관된 관점을 보여준다. 이런 설명 방식은 테아이테토스의 철학적 고민이 산고(産苦)에서 시작되었음을 연상케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지식의 발생과 관련해서 『테아이테토스』가 그리는 그림이 임신(영혼의 잠재성)과 출산(잠재된 생각의 현실화) 모델이라 연관지어 보면 이해가 간다. 소크라테스가 보여 주는 산파술의 수행은 철학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살아 생전 집필을 하거나 문서로 남긴 글은 없다. 그의 제자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의 심오하고 체계적인 사상과 이론을 접할 수 있어 다행이다. 플라톤의 저술들이 2천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접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플라톤의 대화편이 쉬운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주역을 맡아 대담자들이 제시한 견해들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이 난해하다. 모든 대화편에는 플라톤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을 접한다면 그의 사상과 스승 소크라테스의 인간미 넘치는 대화술과 산파술의 묘미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테아이테토스』 (지식에 관하여)을 텍스트 위주의 독해로 쓴 글이고, 다시 한번 심층적 텍스트의 각도에서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