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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

글 쓰기 2024. 2. 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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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는 불행?

 

대구 김종협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의 작품인 관객 모독을 읽고, 전통 연극의 형식 파괴와 과감한 언어 실험을 보여주는 희곡이라서 많이 당황하고 놀란 경험이 있다. 그의 소설 소망 없는 불행(윤용호 옮김, 민음사, 2002)을 접해서 페터 한트케의 작품 세계에 한번 더 빠져들고자 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면서, 글을 쓰면서도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히 전하기 위해 엄격한 자세를 유지한다.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 그리펜에서 태어났다. 그라츠 대학교 재학 중 첫 소설 말벌들로 문단에 등단한다. 희곡, , 소설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는다. 1987년 영화 감독 빔 벤더스와 함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저서로는 희곡 카스파르, 아직도 폭풍과 시집 내부 세계의 외부 세계의 내부 세계,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기퍼의 불안,모라비아 강의 밤등이 있다.

 

케른텐에서 발행되는 신문 폭스차이퉁지의 일요일 자 부고란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토요일 밤 A(G)51세 가정주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p.9)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거의 칠 주가 지났으며,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사라지기 전에 작업에 착수한다. 그녀는 수면제를 복용하여 자살하기 전에 유언장의 복사본이 든 편지를 등기로 저자에게 보낸다. 저자는 어머니가 태어난 시점부터 돌아가신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복기하면서 글을 쓴다.

 

어머니의 삶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여성이 자아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배움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가난과 고지식한 부모로 인해 좌절된다. 많은 것을 소망했으나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던(소망 없는 불행?) 어머니의 삶을 쓰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작가로서 고민이 어머니를 회상함으로써 드러난다. 어머니의 죽음이 있고, ‘인 저자는 그것을 쓴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어머니의 진짜 삶과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한마디로 어머니는 존재했고 성장해 갔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즉 그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될 수도 없었다.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공포감을 갖고 있었다.” (p.76)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하며 시작한 작품은 저자의 소설 쓰기에 대한 대답으로 마무리된다. “나중에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훨씬 더 자세하게 쓰게 될 것이다.” (p.87) 지금 쓴 내용이 충분히 자세한 글이 아니라는 말을 포함하는 동시에 회상이 거듭될수록 더 자세해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소설 말미에 어머니에 대한 일화들을 소개하는데, 그 표현들이 모두 너무 밋밋하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가능한 한 적합한 문장들로 기억에 접근해 가려고 노력함으로써 공포의 상태에서 작은 쾌감을 얻어내고, 공포의 쾌감에서 회상의 쾌감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p.83) 가슴 아팠던 일을 떠올려 가며 가까스로 지나온 슬픈 일을 굳이 마주하려는 것은, 우리 마음에서 공포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소망 없는 불행은 페타 한트케가 어머니의 자살을 겪은 후 쓴 산문이다. 어머니의 일상을 회상하면서 전후 사회 모순과 생활고를 조명한다.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이 자의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목이나 소재의 비극성과 달리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절망을 두려워하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기다리는 용기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인가?

독창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경험하고픈 독자에게 추천한다. 좀 난해하지만 특수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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