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글 쓰기 2024. 3. 9. 06:53
728x90
반응형

자문(自問)

 

 

 

페터 비에리는 스위스 출신의 철학 교수이자 소설가이다. 2014년 트락타투스상을 수상한 삶의 격자기 결정, 자유의 기술등 다수의 철학서와 리스본행 야간열차, 레아등 소설을 발표한 베스트셀러 저자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은행나무, 2018)은 치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철학적 인식의 문제, 언어 철학에 중심을 둔 작품이라 읽으면 깊은 몰입도에 빠져들게 한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주제에 맞는 방향으로 엮어 깊은 통찰을 이끌어 낸다.

 

책에서 저자는 교양이란 무엇인가?’, ‘학문의 언어와 문학의 언어를 통한 이해의 다양한 모습이라는 강연의 내용을 글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하고 있다. 인생에서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저자가 자기 철학을 바탕으로 쓴 다분히 성찰적인 요소가 깃든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우리들에게 한번쯤 깊이 사유하게 하고, 사색할 시간을 던져준다. “자기 자신과 세계를 대면하는 방식, 바로 이것이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입니다.”(p.9)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한다. 의심의 불편함을 싫어하고 확신의 위안을 선호한다. 상대방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불신한다. 자신의 결론에 동의할 만한 사람들만 가까이 하는게 현실이다. 살면서 겪는 이런 인간관계에 대해서 저자는 차분한 어조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고 강조한다. 내가 진짜로 알고 이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 중에 그리 확실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물음을 쉬지 않고 던질 때 우리는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단련될 수 있다. 확증편향이 저주가 되지 않도록 생각과 지식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깨어 있는 사람(교양을 쌓은 이)은 단순한 궤변적 외양과 올바른 사고를 구별할 줄 안다.”(p.16)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저자의 문학적인 재능 때문인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약속과 막스 프리슈의 몬타우크,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같은 문학 작품을 설명하면서 문학의 언어를 서술한다. 특히 마담 보바리가 명작으로 탄생한 것은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 플로베르가 연출한 문장과 단어 덕분이라고 말한다. 글의 형식 때문에 그 글을 읽고 싶어지는지가 우리가 문학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문학적 글에서는 내용이나 줄거리의 많은 부분이 형태, 단어의 선택과 작풍, 속도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런 기준을 두고 작품을 선택한다.” (p.85)

 

얼마 전 한 언론에 보도된 가슴이 뭉클한 기사가 있다. 한 역 광장에서 한 시민이 노숙인에게 점퍼를 둘러주고 있는 모습이다. 너무 추워 커피 한 잔을 사달라고 부탁한 노숙인에게 5만원짜리 지폐와 방한 점퍼, 장갑을 건네주는 것이다. 모두가 어렵고, 불안과 불편함의 정서가 우리 사회의 온기를 앗아가고 있는 이 때 편견과 불신을 잠재우는 따뜻한 정을 안겨주는 기사이다. 우리 스스로 어떤 가치를 중시여겨야 할 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 또한 짧은 분량이지만, 교양의 원리를 파고드는 건, 그 안에 흐르는 정신을 헤아려 자유로워지는 삶을 개척하게끔 알려준다. 우리 삶에서 무심하고 무감각하게 지나치는 것들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게끔 자문(自問)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