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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글 쓰기 2024. 5. 9.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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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한때 ‘여성가족부 폐지때문에 사회가 시끄러웠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하여 특정 집단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연출하는 정치기획으로 보인다. 페미니즘이 그렇게 혐오, 배제해야 할 대상인가? 나이지리아 출신의 소설가인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가 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김명남 옮김, 창비, 2016 ) 가 생각난다. 이 책은 그녀의 테드(TED) 강연 원고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어렵고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그녀의 경험과 일상을 부드러운 언어로 풀어쓴 페미니즘 입문서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페미니스트 작가 반열에 오른 아디치에는 1977년 나이지리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아홉에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비리그 대학들에서 공부했다. 주로 인종, 이민자, 여성에 대한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은 소설로 평단의 각광을 받으며 차세대 작가로 부상한다. 장편소설로 보라색 히비스커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아메리카나, 소설집으로 숨통의 작품이 있다.

 

 

저자는 여성 차별을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과 연결해서 본다. 사회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자기 의사를 강하게 펴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가르친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부차적 인간으로 자리매김하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 만연하다. 이 때문에 여성과 남성에 대한 사회의 이중 잣대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회는 강간을 비난하지만 동시에 강간을 당한 여성을 비난한다. 젊은 여성의 처녀성은 칭찬하지만, 젊은 남성의 동정(童貞)을 칭찬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남자가 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남자는 두려움, 나약함 따위를 몰라야 한다는 식의 남성성이 부추겨지는 것도 비판한다. 이런 규범은 남성에게 외양적 강인함을 강요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내면을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저자는 우리 모두를 옥죄는 잘못된 남성성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껴질수록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 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p.31) 의식하지 못하는 규범의 사회화가 문제이다.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화가 그 차이를 더 강화한다는 것이다. 요리나 청소 같은 집안일은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한다. “오랜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요리를 여성의 역할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세프라는 화려한 이름의 요리사는 대다수가 남자라는 사실인데도...”(p.39)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더 행복해진다고. “만일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젠더가 아니라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떨까요? 젠더가 아니라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떨까요?”(p.40) 자라면서 내면화했던 젠더의 교훈들을 벗어버리려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 말미에 저자는 페미니스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p.52)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란 제목보다는 이 글귀가 더 와닿는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한 개인의 내면에서 갈등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도 수반한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은 기존의 가치 질서를 바꾸는 운동이기 때문에 사회적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아디치에의 다음 인터뷰 내용이 이 책의 요점을 말해주는 듯하다. “여성이 여성이란 이유로 압박을 받는다면, 남성이 남성이란 이유로 특권을 누린다면 그 사회는 잘못된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남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회를 위해 성차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들이 없어지기를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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