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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

글 쓰기 2024. 2. 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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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있는 광장

대구 김종협

 

최인훈의 광장(문학과 지성사, 1996)196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광복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됨으로써 생기는 이념의 분열을 주제로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다룬 소설이다. 남북 문제를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에서 접근한다. 주인공의 정신적 갈등과 불안이 이남, 이북에서의 두 여자와의 사랑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진다.

 

저자는 1936년 함경북도 회령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한다. 1959년 육군 장교로 복무 중 자유 문학지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등 발표하면서 처음 문단에 등단한다. 재대 후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전념하는데, 1960년 발표한 광장을 통해 작가의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그는 현실, 세계 관계, 나아가서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담은 많은 작품들을 발표한다. 동인문학상, 박경리문학상, 이산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공산주의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과 불법적인 학대를 당한다. 인천 윤애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월북한다. 월북 이후에 그는 이북의 어느 신문사에서 일을 한다. 그의 두 번째 애인인 은혜를 이북에서 만난다. 주인공은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전쟁 포로 석방 때 중립국을 선택한다. 북에서 사랑한 여인인 은혜는 자기의 아이를 가진 채 전사한다.

 

먼저 광장은 이념과 현실의 괴리,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 조건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가 주인공 이명준이 꿈꿨던 이상향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명준이 본 남한의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 가장 거친 곳이라 생각한다. 정치 광장에는 똥 오줌에 쓰레기더미만 쌓여가고, 정작 정치가들은 눈에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광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에 주인공은 광장을 찾아 북으로 월북한다. 하지만 이명준이 느낀 북한은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와 신념이 없는 광장만 존재한다. 지시에 따른 의무만 있는 광장, 그곳에 개인의 밀실은 없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월북한 자신을 저주하면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허무에 빠지게 된다. “추악한 밤의 과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입니다.”(p.56~57),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일찍이 위대한 레닌 동무는 말하기를······’ ‘일찍이 위대한 스탈린 동무는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동무들에 의하여, 일찍이 말해져버린 것입니다.“ (p.114~117)

 

또한 이 소설은 진정한 사랑의 발견이 요구하는 대가의 혹독함을 진정한 자아 성찰로 깨닫고 있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명준에게 두 여인 윤애와 은혜가 등장한다. 갈 곳 잃어 방황하던 주인공이 기댈 곳은 사랑이었다. 두 여인은 이명준을 성장시킨다. 윤애는 날마다 변하는 날씨처럼 그가 정착할 수는 없는 여인이었다. 받아들이는가 하면 밀어낸다. 윤애는 쉽게 내어 주지 않는다. 반면 북에서 만난 은혜는 아주 주체적이고 현실적인 여성이다. 자신의 의지대로(이명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로 떠나고, 전쟁이 나자 돌아와 간호사로 지원해서 전쟁터로 이명준을 찾아온다. 은혜는 전쟁 속에서 이명준에게 광장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런 그녀는 폭격으로 전사한다. 주인공은 오롯이 느꼈던 광장을 잃고 만다. “죽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 (p.164), "낙동강에 물이 아니라 피가 흘렀다는 싸움은 이날의 그것이었다. 은혜는 부지런히 만나자던 다짐을 아주 어기고 말았다. 전사한 것이다.“(p.165)

 

이 소설에는 환각처럼 다가오는 상징체가 등장한다. 부채와 갈매기가 그것이다. 부채는 주인공의 삶의 광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북 자리라는 한계적 상황을 내포하며 모든 삶을 지운 채 체념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바다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 두 마리는 은혜와 그녀가 낳았을지 모르는 아이의 상징물이 된다. 그 새들이 계속 이명준의 위를 날아다니며 따라오는 것은 그의 과거를 상징한다. 어느 곳에서도 주인공 자신이 원했던 이상적인 광장이 없음에 절망한다. 결국 그는 바닷물에 뛰어드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시작 부분인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바다, 그곳이 바로 주인공이 찾고자 했던 광장의 상징이 아닌가...

 

분단의 기록과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소설 광장은 참혹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던지는 작품이다. 4.19 혁명이 열어 준 자유의 공간 속에서 남 · 북을 균형있게 다룬 이 소설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민하게 만든다. 62년이 지난 지금에도 본질적으로 같은 정치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데, 최인훈의 광장을 한번쯤 다시 읽어보면,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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