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온전한 나 자신
물질적으로 삶은 풍요롭게 변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숭고한 가치들은 잊고 살아간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복과 같은 가치는 조금씩 잃어 가고 있다. 물질을 좇는 마음보다 의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측면이 더 많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에서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소설이 있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2023)가 그것이다. 전에 읽은 『쇼코의 미소』와 더불어 또 한번 찐한 여운을 안겨주는 책이다.
최은영은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2013년 〈작가세계〉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그리고 2017년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쇼코의 미소』, 『밝은 밤』, 『내게 무례한 사람』 등이 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7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답신』의 화자는 사랑을 하는 일에도 받는 일에도 재주가 없지만 언제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다. 조카에게나 언니에게나 이 화자는 계속 잘하고 싶어 한다. 더 좋은 걸 주고 싶고, 더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희망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언니의 아이이기 때문에, 나는 네가 항상 안전하기를, 너에게 맞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랐어.” (P.179) 좋은 의도로 행동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는 사랑이라 안타깝다. 살면서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기 때문에 『답신』의 실패한 사랑은 우리에게 공감을 준다. 그렇지만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사랑을 작가는 말하고자 한다. “나는 대답해. 때때로 사랑은 사람을 견디지 못하게 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게 하니까.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P.178 ~179)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서로 기대고 의존하면서 형성되는 유대와 사랑이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 기남은 이름도 모르는 탁구를 친 여자들과 포옹하면서 예상치 못한 따뜻함을 느낀다. “그 포옹이 얼마나 좋았는지 기남은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p.302) 소설 시작 부분에서 홍콩 입국장에서 분실한 캐리어에 대해 친절하게 도움을 준 처음 본 젊은 여자에게도 기남은 작은 충격을 받는다. 부모에게 단 한순간도 사랑받지 못했던 기남은 작은 친절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딸의 초대로 홍콩에 온 기남은 우경(딸)이 자신에게는 누구보다도 어려운 존재여서 거리감을 느낀다. 반면 큰 딸 진경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신발을 찾자 진경이 자기 품에서 기남의 신발을 꺼냈다. “발 시리지 마, 엄마.”(p.310) 기남은 세상에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걸 진경을 만나고서야 알게 된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 작가는 그 마음을 기남을 통해서 결코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걸 잃어도 그것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고 강조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곁을 주는 사람인가 고민하게 된다.
『파종』은 돌아가신 엄마 대신에 오빠가 살아 있을 적엔 알지 못했던 오빠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소리(딸)의 마음을 따라가면서 비로소 오빠의 사랑 표현 방식과 돌봄 행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그랬지.” (p.208) 소리는 아무거나는 답이 될 수 없다는 삼촌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된다. 텃밭에서 씨앗을 파종하며 삼촌과 함께했던 시간으로부터 배우고 이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거듭난다. 사람은 누군가와의 부대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상호의존적인 관계는 독립적인 삶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삶을 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은영은 작가의 말에서 말한다.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는 일이 중요하다.”(p.348)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내 쪽의 일방적인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내 마음의 정직성를 바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 다정했으면 좋겠고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곱 편의 글에 실려 있는 글을 읽다보면 사람사는 다양한 감정들을 접하게 된다. 폭풍우와 소낙비가 아니라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부드러운 비와 같이 마음에 단비를 안겨준다. 희미한 빛으로도 타인에게 조금은 공감과 따뜻한 사랑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들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p.44) 그 빛으로 보이는 곳으로 더 가보고 싶어지는 작가의 소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