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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글 쓰기 2024. 5. 1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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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포르투갈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 옮김,해냄,2015)을 읽어본다. 1995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갑자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먼다는 상상에 기초한 리얼리즘 작품이다. 신랄한 풍자와 냉엄한 비판으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음표를 비롯해 모든 문장 부호를 넣지 않고 직접 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문체가 독특하다.

주제 사라마구는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7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82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저서로 바닥에서 일어서서, 돌뗏목, 예수의 제2복음등 다수가 있다.

 

 

도시 한 복판에서 운전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먼다. 이 환자를 진찰한 안과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도 눈이 멀고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 사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병이 급속도로 퍼진다. 당국은 경찰력을 동원해 눈먼 사람들을 잡아다가 빈 정신병원 건물에 강제 수용한다.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은 급속히 확산되어 도시 전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눈이 멀었다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눈이 안 보여, 눈이 안 보여, 남자는 절망감에 젖어 되풀이해 소리쳤다.”(p.9) 단순히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현대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존 양식으로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윤리 의식들을 잃고 사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물질적인 소유에 집착하여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는 장님이 되는 이 세상을 비판한다. 성욕을 채우기 위해 총과 먹을 것으로 약자들을 협박하는 무뢰배들에게서는 우리 사회에 흔히 있는 강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뢰배들과 집단으로 성관계를 갖는 여자들과 안과의사가 선글라스를 낀 여자와 불륜을 행하는 장면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 준다. 결국에 우리는 고매한 정신보다도 성욕이라는 본능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인가? 윤리 의식을 상실한 현대 사회의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눈이 먼) 인간의 무지를 질타하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운 수용소에서 그나마 생존을 유지하고 지속시킨 힘은 연대 의식이다. 특히 사라마구의 화신인 의사의 아내는 타인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통해 사람들을 덜 불행해지도록 애쓰며 돕는다. 이에 함께 생활하는 수용소 사람들도 나눔의 정신으로 서로 돕고 함께하는 연대 의식를 행한다.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에 대한 신뢰의 회복은 살아 있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이들에게 연대 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수용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희망인 것이다. 사라마구는 의사의 아내를 통해 연대 의식이야말로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이자 인간의 선한 면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의사의 아내의 말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올바로 봐야한다고 경고한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의사의 아내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하앟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p.461) 의사의 아내의 생각처럼 눈먼 자들의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태는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눈먼 사람들의 도시』는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현명하게 세상을 다시 보게끔 한다.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허상에서 벗어나 서로 베풀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한 잘 보는 자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 책은 우리에게 충고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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