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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글 쓰기 2024. 4. 1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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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자각

 

 

불평등은 모든 사회에서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마다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많은 사람이 불평등이 큰 문제라고 우려를 표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녹슬고 부서진 사다리에 매달려 아등바등하는 모습들을 본다. 우리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생존투쟁의 오징어 게임이 곳곳에서 펼쳐지는 사회에 산다. 이런 현상을 새삼 환기시켜주는 책이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범우사, 1984)이다. 동물농장은 영국 해학문학의 전통을 이어 받아 동물을 의인화시켜 인간 제국을 풍자한 우화소설이다.

 

조지 오웰은 영국 소설가로 본명은 에릭 블레어(Eric Blair)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 이튼 학교에서 수학, 버마에서 경찰관 생활을 하였고, 파리와 런던에서 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문필 활동을 하였다. 처녀작 파리와 런던의 최저생활을 발표하여 사실주의 작가라는 평을 받았고, 스페인 내란 체험을 기록한 카탈로니아 찬가와 대표작으로 1984, 버마 시절, 공기를 찾아서등이 있다.

 

 

인간의 수탈을 참지 못한 동물들이 반란을 통해 농장주 존스를 추방하고 세상을 뒤집음으로써 권력을 갖게 된다. 새 지배층이 된 돼지들의 권력 독점은 인간보다 더 추악하고 탐욕스럽다. 당연히 다른 동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힘들어진다. 실제 동물들은 새로 권력을 차지한 돼지 나폴레옹의 현란한 거짓말에 속아 더욱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 소설에서 조지 오웰은 권력은 타락하게 마련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타락한다.’란 것을 강조한다. 독재가로 변해가는 나폴레옹의 행동에서 잘 나타나 있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냥 나폴레옹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공시적으로 우리들의 지도자’, ‘모든 동물의 아버지등의 명칭으로 불리었다.” (p.395), 암소 두 마리가 우물에서 물을 마시면서 이렇게 외쳤다. “ 나폴레옹 동지의 영도력 덕분에 이와같이 맛있는 물을 먹을 수 있는 거야!” (p.395)

이 동물들의 반란은 191710월의 러시아 혁명을, 농장주 존스 시대는 바로 러시아 혁명에서 사라진 니콜라스 2세 정권을 말한다. 그 당시의 권력 현실의 부패성 및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조지 오웰이 이 작품에서 제시하고자 한 것은 민중의 자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말 복서는 D까지밖에 몰랐다. 그 밖의 다른 동물들은 A자 이상을 배우지 못했고, 양이나 암탉이나 오리는 칠계명조차 암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p.357) 스노우볼의 주장대로 만약 동물들이 알파벳을 익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나폴레옹 같은 독재 권력자가 동물들의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 똑똑해야만 하니까. 배우고 익히고 경계하는 것만이 우리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당연한 방법임을 저자 오웰은 제시한다. 우리 앞에 부당함이 들이닥칠 때 그 부당한 권력을 몰아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이 비참하고 고생스럽지 않을려면, 깨어있는 스스로의 자각이 필요하다고 오웰은 강조한다.

 

조지 오웰은 이 소설 말미에서, “밖에서 엿보고 있던 동물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인간과 돼지의 얼굴을 몇 번이고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p.429)라고 끝을 맺음으로서 독자에게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불평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성찰의 시간을 던진다. 동물농장에서 독재자가 권력을 남용할 때 그가 어떤 책략으로 현실을 호도하며 어떤 조작으로 국민을 우롱하는가 하는 가장 가증스런 실례를 오웰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시대에 날카로운 풍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오늘날에도 그 효력을 상실하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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