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사랑과 조건
추운 겨울 날씨는 뒤로하고 개나리가 피는 자연의 봄이 오고 있다. 벚꽃 나무의 꽃망울도 필 준비를 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느껴진다. 화창한 봄 날에 전에 한번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윤지관,전승희 옮김, 민음사, 2003)을 펼쳐 본다. 『오만과 편견』은 1813년 여류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발표한 유명한 고전문학작품이다. 남녀간의 사랑의 과정을 예리한 인간 관찰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난다. 어려서부터 습작을 하다가 16세 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21세 때에는 장편소설을 완성한다. 작품으로는 〈이성과 감성〉 (1811), 〈맨스필드 파크〉 (1814),〈에마〉 (1815) 등의 출판으로 큰 명성을 얻었고, 죽은 뒤인 1818년에 출판된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의 작품이 있다.
영국 하트포드셔의 작은 마을에 사는 베넷 가에는 다섯 자매가 있다. 그 중 위의 두 명이 결혼 적령기를 맞고 있다. 온순하고 마음이 착하며 만사에 내성적인 맏딸 제인과, 인습과는 거리가 먼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엘리자베스이다. 이 조용한 시골에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의 신사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대저택에 머물기 위해 오게된다. 베넷 가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거기다 젊은 장교들까지 한꺼번에 몰려오자 베넷 가의 딸들에게는 짝을 선택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침착하고 아름다운 맏딸 제인은 빙리의 마음을, 엘리자베스는 잘생겼지만 오만한 다아시를 만나면서 서로 끌리면서도 오해와 밀당을 반복하게 된다.
저자는 작품에서 결혼이 유일한 수단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 가부장제 하에서 가난한 여성이 처하게 된 사회 현실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소설은 가부장제와 남녀 불평등 제도의 모순 속에서 여성이 받게 되는 불합리한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에 저항하며 정신적인 각성과 성장을 통한 분별력을 갖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자 한다. 여성들은 독립적으로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 · 사회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 생활을 보장하는 방편이고 하나의 안정된 직업과도 같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이야. 콜린스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내 생각엔 우리에게도 다른 어느 커플 못지않게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 (p.180~181) 샬럿의 결혼관을 통해 저자는 당면하게 되는 여성의 현실과 제약을 풍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또한 제인 오스틴은 당시 신분 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베넷 씨의 재산은 아들이 없는 탓에 남자인 먼 친척인 콜린스에게 한정 상속이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p.42) 한정상속은 장자가 없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인척 중에 서열이 높은 남자에게 그 재산을 한정하여 상속한다. 이러한 제도는 가문의 몰락을 막는 상류층의 우월적인 계급의식을 보여준다. 남자에게 재산이 세습됨으로 인하여 베넷가의 딸들에게는 불이익이 실로 막대하고 불합리한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에는 이런 재산 상속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귀족 가문과 상류층의 계급의식을 비판하는 점이 깔려 있음을 짐작케 한다.
“콜린스 씨, 당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군요.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을 말하는 이성적인 존재로만 생각해 주세요.”(p.157~158) “협박을 당한다고 해서 이치에 닿지도 않는 일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에요. 이런 식의 설득이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제 성격을 아주 잘못 보신 겁니다.”(p489) 엘리자베스는 콜린스의 청혼이든 캐서린 영부인의 부탁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자아실현적인 결혼에 성공하는 여성으로 엘리자베스를 등장인물로 내세운다. 주관이 강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안목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한정상속이라는 불합리한 재산 상속제도와 부족한 교육 여건 속에서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당당한 여성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심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고, 대화 속에서 재미와 생동감 있는 전개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걸작으로 평가된다. 『오만과 편견』은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만큼 제인 오스틴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책으로, 차가운 마음에서 흥미와 훈훈한 마음의 시간으로 변화시켜 주는 책이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영화화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오스틴의 다른 작품과도 만남의 기회를 가져보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