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수의 <미래의 조각>
미래의 조각
한국문학의 가장 빛나는 작품과 소설가에게 주어지는 제69회 현대문학상의 수상작은 『미래의 조각』이다. 정영수의 『미래의 조각』 (현대문학, 2023)이 그 선정 작품이다.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는 정영수 소설이외에 김지연의 『반려빚』, 문진영의 『덜 박힌 못』 등 7편의 수상후보작도 담겨 있다. 『미래의 조각』은 더는 미래에 대해 낙천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시기이지만, 그래도 낙관할 수 있는 믿음을 가능하게 만든다. 삶의 닫힌 구조에 대한 낙담을 저자는 무덤덤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정영수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창작과 비평 신인소설상에 단편소설 『레바논의 밤』이 당선되어 등단한다. 소설집으로 『애호가들』, 『내일의 연인들』 이 있다. 2018년, 2019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다.
주인공인 나는 어머니가 고농축 살충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여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는 형의 연락을 받는다. 평소 어머니는 낙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왔기에 그 소식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안타깝게도 고농축 살충제는 어머니의 성대를 파괴하여 목소리를 앗아가 버린다. 이후 어머니는 소설 비슷한 이야기를 노트에 쓰기 시작한다.
어머니에게 지난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나의 지난 삶에 죄를 지었다.” (p. 19) 어머니가 늘 되새김질해 온 과거는 장밋빛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어머니는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아버지를 만났다. 십대에 아들을 낳고 이후에도 또 아들을 낳았으며 결국에는 원하지 않는 삶을 체념하듯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온전한 삶을 지탱하기가 힘든, 어머니가 살아온 세계는 지독하리만치 비좁고 고독했던 것이다. 자율 주행 전기차와 관련한 뉴스를 보고 어머니는 말한다. “그때 되면 나 차 한 대 사줘, 차 타고 유럽 가게.” (p.23) 지난 삶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것을 미래에서 찾고자 한 것인가? 어머니가 그리는 미래에서의 세상은 언제나 지금보다는 나은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미래를 바라보는 그러한 낙관성을 어머니의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조각』 제목처럼 어머니에게 미래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현재가 미래로부터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자살 시도 후 목소리를 잃은 어머니는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글에는 현실의 아버지나 아들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두 딸을 낳는다. 큰딸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작은딸은 생물학자가 되어 세상을 돌아다닌다. 어머니는 삶의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오기를 소망한 것인가.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삶의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자신을 상상해서 글로 표현한다. “미래도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낙관이 가능한 이유는 미래는 언제까지고 미래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어디에나 있다. ” (p.37) 현실의 상황과 구별되는 어머니의 미래의 조각이 노트의 글 속에 재구성되어 있다. 어머니의 글과 같이 주인공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글을 쓰는 작업은 어렵고 힘든 과정에 속한다. 이는 이 책의 다른 작품인 『일몰을 덛는 일』에서 ‘인간은 왜 상상을 하고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주인공처럼 작가 정영수의 고민이기도 하다.
『미래의 조각』은 어머니의 자살 사건을 둘러싼 인물의 내면과 그 이후의 과정을 잔잔히 그려낸다. 어머니의 글에는 자신이 살아본 적 없는 삶이나 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삶을 그려낸 문장들이 나온다. 어머니가 그리는 미래의 세상은 언제나 지금보다 나은 모습일까.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채로 멀리 있다.”(p.37) 짐작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무덤덤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정영수의 문장들이 신선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