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의 <2인조>
내 행위에 대한 판단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요즘 시대에 흔하게 쓰이는 말이 있다.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이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이나 우울증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증후군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규정했다. 의학적 질병은 아니지만 제대로 알고 관리해야 하는 직업 관련 증상 중 하나로 인정한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60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74.7%가 출근 후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번아웃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위로 내지 도움을 줄만한 책이 있다. 이석원의 「2인조」 (달, 2020)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2009년 〈보통의 존재〉, 2015년 <언제 들어도 좋은 말> 등의 산문집을 발표한 이석원의 다섯 번째 산문집이다. 일상 속 스트레스에 지쳐 몸과 마음이 무너져버린 작가 자신을 일으키기 위해 보낸 일 년간의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작가가 얼마나 스스로에게 무관심했고 타인과 세상의 시선만 의식하며 살았는지 깨닫게 되면서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기로 마음을 바로 잡는다.
이 책은 이석원 작가의 인생론 그 자체이다. 자기 고민을 바탕으로 쓴 다분히 성찰적인 요소가 깃든 단어인 ‘2인조(제목)’가 독특하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나를 구원해주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과 둘이서, 다시 말해 스스로 삶을 헤쳐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고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또다른 내가 있는,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 아닌가.” (p.232-233) 그렇기에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일 수 없으며 내 편이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작가의 자기 고백적인 경험에서 나온 진솔한 내용이라 울림을 주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인정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평가는 내가 재평가한다.” (p.145) 한 마디 말과 행동으로 인생 전체를 평가 하는 등 부실한 근거로 섣부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아닌지 등을 살피면서 그 평가의 질을 따져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의 과거 있었던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시골 동네에 살면서 부모와 이웃 어른들로부터 ‘그 애는 양보심이 강해 그런 것 욕심내지 않아.’ 같은 말로 필자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참았고, 먼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양보하고 나중에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놀랐다. 이 부분에서 다시는 무작정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새삼 깨닫는다. [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직장 문화에서 휴식과 재충전에 시간을 쏟을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 퇴근 후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업무를 계속 생각하거나,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감정적 에너지를 쏟다 보면 결국 탈진해 우리 몸에 이상이 온다. 이석원 작가는 ‘나’에게 집중하고, 스트레스를 견뎌낼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나를 살리기 위한 지침을 몇 가지 제시하는데, 그 중에서 ‘내 탓 하는 습관 버리기’가 가장 와닿는다. 즉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해주려 애쓰면서 더는 어떤 자책감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 나를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석원 작가의 1년 간의 본인 경험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차분하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전개하고 있어서 진솔하게 느껴진다. 의외로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왔는데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듯이 내 안에 또다른 나를 인식하는 계기를 던져주는 책이라 의미가 깊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든 내 행위에 대한 판단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규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 (p.342)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인생에서 불필요한 감정과 고통인 정신적인 피로감을 덜어주게 할 소중한 책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